구리시는 한강 이북 경기도의 중앙 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한강의 지류인 왕숙천과, 북으로는 남양주시, 서쪽으로는 서울의 노원구, 중랑구, 광진구와 시 경계를 마주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아차산과 한강을 경계로 서울과 마주보고 있다. 본래 경기도와 양주군에 속하다가 1980년에 양주군과 분리되어 남양주군 구리읍이 되었고, 1986년 구리시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구리시는, 구리시만의 독자적인 역사 사실을 찾아내기가 무척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구리시의 역사는 이웃한 양주 혹은 남양주 등과 겹쳐지는 역사의 서술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다만 구리시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이 있을 경우는 반드시 서술하되, 일반적인 서술은 양주, 혹은 남양주시와 구분하기가 어려운 점을 미리 밝혀두고자 하며, 서술하는 시대는 선사시대부터 해방 이후 제1공화국 때까지 임을 미리 밝혀 둔다.


1.구석기시대 l 구리시역사 > 선사시대


구리시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는가를 밝히기는 현재로서는 무척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구석기시대인들의 경제활동이 주로 수렵과 어로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기존의 연구로 미루어 볼 때, 한강과 접경한 구리시 혹은 그 인근에서도 사람들이 일찍부터 거주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하겠다.
현재 한강유역에서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거주한 흔적이 30여 곳에서 발견되고, 특히 구석기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유적지로 화도면 검터, 두촌, 마진, 마재 등과 전곡리 유적지 등이 구리시와 이웃하여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한강변에 접경한 구리시에도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매몰되고 흔적이 남아있지 않지만, 구리시와 한강변으로 면한 서울의 면목동 일대에서 채집된 300여 점의 석기와 그 파편들은 그 시기가 3만년을 전후하는 구석기 후기 문화층의 것으로 밝혀졌다. 발견된 석기들은 외면찍개, 양면찍개, 긁개, 망치돌, 마치돌 등의 몸돌석기와 뾰족개, 옆날 긁개, 끝날 긁개 등의 격지석기들로, 모두 석영맥암 석기들로 밝혀졌다.


1.신석기시대 l 구리시역사 > 선사시대


구석기시대와 비교하여 신석기시대의 큰 차이점 중의 하나는 경제활동이 채집경제에서 생산경제로 전환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반도에서 언제부터 채집경제단계가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대개 신석기시대 후기에 이르러 중국의 화북지방에서 농경의 방법이 전수되어 농경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당시 사용된 농기구로는 돌보습, 돌괭이, 돌낫, 반달칼, 짐승의 뼈로 만든 괭이, 낫 등이 나타나며, 주로 도토리, 조, 피 등이 식량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유적지는 약 150여 개소에 이르고 있으며, 구리시 지역의 신석기문화 유적은 구리시 아차산의 동쪽인 현재의 사노동, 인창동, 동창동, 구릉산 일대에서 빗살무늬 파편과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 등이 수습된 바가 있다 그러나 이 유적지들은 모두 일제시대에 수습된 것으로, 현재는 모두 파괴되어 학술적인 검증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이러한 이유로 유적지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유적지와 비교적 가까운 지역인 서울의 미사리 유적지의 성격을 미루어 볼 때 기원 전 4,000~3,500년을 상한으로 볼 수 있는 유적지라 추정되며, 이 사실은 미사리만이 아니라 주변의 한강유역지대에서는 한강변의 비옥한 충적평야를 배경으로 신석기시대부터 주민들의 거주가 있었다는 것을 실증하는 자료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