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신앙이란 집안의 요소마다 신(神)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집안을 보살펴준다고 믿고, 이들 신에게 정기적으로 또는 필요에 따라 의례(儀禮)를 올리는 행위를 말한다. 가정신앙, 혹은 가신신앙(家神信仰), 가택신앙(家宅信仰), 집안신앙이라고도 말하며, 집안에 있는 신을 가신(家神), 가택신(家老神)이라 부른다.
전근대 사회에 우리네 가정에는 모든 곳에 신이 깃들여 있다고 믿었다. 대청마루의 성주신, 안방의 조상신과 삼신, 부엌의 조왕신, 뒤곁의 터주와 업신, 우물의 우물신, 변소의 측신, 마굿간이나 외양간의 우마신 등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일정한 곳에 자리 잡고 저마다 맡은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 우리들의 삶이 항상 신과 함께 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은 지역에 따른 차이가 있으나, 많은 지역에서는 가정신앙이 급격히 사라지거나 다른 것으로 변질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구리시처럼 서울의 위성도시로서 기존의 주거환경이 파괴되고 새로운 주거환경의 조성과, 이에 따른 거주민들의 성분 변화는 기존의 가정신앙에도 새로운 양상 내지는 기존 가정신앙의 소멸로 귀결되고 있음을 조사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가정신앙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각 가정을 일일이 방문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마을 신앙조사에 비하여 심도 있는 조사를 행하지 못하였다. 다만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여 구리시의 가정신앙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가장 많이 눈에 보이는 것이 입춘축(立春祝)을 대문이나 기둥에 써서 붙이는 행위로, 입춘축에 적은 글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발견되었다.

    □ 立春大吉
    □ 建陽多慶
    □ 萬事亨通 등의 일반적인 종류와,
    □ 歲在庚辰年戊寅月壬辰日辛亥時立春大吉이라 하여 입춘의 구체적인 시각까지 적어놓은 것.
    □ 龍○福○逐 (○부분은 떨어져 나가고 없었음)
    □ 千禍皆消滅 四時大吉祥
    □ 太歲庚辰萬事如意亨通
    □ 立春大吉萬事亨通과 千禍皆消滅, 四時大吉祥을 함께 붙힌 경우
    □ 立春大吉萬事如意亨通과, 天下泰平春 人間五福來,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등을 붙인 경우가 나타나고 있었다.

입춘축 이외에 나타나는 가정신앙으로서는 집안고사, 금줄, 짚주저리 등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우미내 마을의 이명무씨 댁에서는 예전에 할머니 때까지 집안의 고사를 지냈던 돌로 만든 제단이 집의 화단에 아직도 남아 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금줄은 아이를 남은 집에서 대문의 입구에 걸어 두어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는 행위로, 비단 구리시만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가정신앙의 한 형태이다. <짚주저리>란 집터를 지켜주는 가신인 <터주>를 모시는 신체(神體)인 <터줏가리>를 말하는 것으로, 짚으로 원물모양을 만드는데, 이를 짚주저리라 한다. 일반적으로 짚주저리 안에는 터줏단지가 들어 있고, 단지 안에는 벼(혹은 쌀)이 들어있는데, 터주를 보통 터줏가리라한다.
터줏가리를 모셔 놓은 가정으로 사노동 안말의 방복선씨 댁 <돼지업주저리>, 같은 마을 추기만씨 댁의 터주주저리와 추계훈씨 댁의 터줏가리, 사노동 언재마을의 서동우씨 댁 짚주저리 등이 조사되었다.

방복선씨 댁의 돼지업주저리는 뒤꼍 장독대에 모셔놓고 있다. 업(業)이란 집안의 재물을 관장하는 신의 이름으로, 보통은 사람업, 뱀업, 족제비업, 두꺼비업 등이 나타난다. 방복선씨의 할머니가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는 꿈을 꾼 후 집안의 가세가 일어난 이후부터 돼지업주저리를 모셨다고 하는데, 매년 한 번씩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제사의 날짜는 음력 10월 초에 마을 공동의 산치성을 끝낸 후, 손없는 날을 잡아서 집안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고사는 고사에만 사용하는 시루를 이용하여 흰 떡을 만들어 돼지업주저리 앞에 놓고 고사를 지내는데, 방복선씨는 2001년 현재 54년째 이 고사를 거르지 않고 지낸다고 한다. 추기만씨 댁의 터주주저리는 마당 뒤꼍에 작은 옹기항아리를 두고, 그 안에 쌀을 담고 뚜껑을 덮고, 다시 볏짚으로 주저리를 만들어 놓았다. 볏짚은 1년에 한 번 새 것으로 바꾸며, 보통은 음력 10월의 마을 산치성이 끝난 뒤에 새로 짚주저리를 만들고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같은 마을 추계훈씨 댁의 터주도 추기만씨 댁의 터주주저리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작은옹기 항아리 안에 쌀과 돈을 넣고, 항아리 입구를 비닐로 싸고 뚜껑을 덮고 짚주저리를 얹어둔 것으로, 약 백여 년 이상 모셔온 것이라고 한다. 매년 음력 10월에 짚주저리를 새로 만들고 떡과 막걸리, 북어 한 마리로 고사를 지내고 있다.
대개의 집에서는 하나의 터주신을 모시고 있는데 비해, 사노동 언재마을의 서동우씨 댁은 매우 다양한 가정신을 모시고 있다. 집의 안방과 마루, 선반 등과 집의 뒤꼍에 모신 4개의 짚주저리가 조사되었다. 뒤꼍의 주저리는 터주대감, 뱀업, 족제비업 등으로 모시고 있다고 하며, 주저리 안에는 각각 쌀?볍씨?콩 물 등을 넣은 항아리가 있으며, 농사가 잘 되고 식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고사를 올린다고 하였다. 주저리를 만든 짚은 매년 새 것으로 교체하지만, 항아리 안의 내용물은 거의 교체하지 않고 계속 사용하고 있다. 고사는 음력 칠월 칠석날 아침일찍 막걸리와 호박부침개를 해서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안방에 모신 것은 성주라고 부르며, 선반을 만들어 상자를 그 안에 넣어 두는데, 상자 안에는 올베 한 필이 들어가 있었다. 아래에는 직접 현지 조사를 하고, 취재한 것을 녹취하여 옮겨 두었다.

01 아천동 우미내마을 이명무씨 댁 입춘축 l 민속문화 > 가정신앙


아천동 316-17번지 이명무씨 댁은 따로 대문이 없고 길가에 직접 현관문이 나 있는데, 그 현관문 벽에 입춘축이 붙어 있었다. 형태는 아주 소박하게 파란색 물감으로 “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 쓰여진 것이었다.

    조사자 : 직접 쓰신 거예요?
    이명무 : 제가 썼죠. 옛날 저기 저 한옥집이 우리 집이거든요. 그 대문에 양쪽에 이렇게 쓰든지 써 가지고 이렇게 썼죠. 근데 뜻이 좋다구요. 이게.
    조사자 : 옛날부터 계속 이렇게 집안에서 쓰고 그랬어요?
    이명무 : 썼죠. 이거는 제가 알고 나서 그 때 이제 대학교 땐가, 그 때일 거예요. 아마, 그때 인제 써가지고, 지금 십오 년 이상 쓴 거죠. 매년. 우리 형님네도 쓰고 그렇죠. 매년. 이제 저는 이건 원래 붓글씨로 써야 하는데(웃음). 그냥 물감으로 쓴 거예요. 정성이기 때문에.

제대로 형식을 갖추지 않고 파란색 물감으로 쓴 소박한 입춘축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쓴 이명무씨의 정성과 의미 부여 만큼은 제대로 쓴 다른 집 못지 않았다.

이명무 : 이것도요, 정신적인 면이 강해서, 아침 해 뜨기 전에, 인제 다른 거 하기 전에, 먹갖다 놓고 벼루해 가지고 직접 쓰고서, 해뜨기 전에. 보통 입춘이 춥잖아요. 추울때 풀도 잘 안붙어요. 그럼 이거를 풀로 해서요, 이게 글씨 쓰는 것도 정성이지만 붙이는 것도 정성이예요. 이거 얼만큼 잘 붙이느냐에 따라서 일년 가고 그러거든요. 근데 이거 틈이 없이 다 붙였잖아요, 이렇게, 그게 이걸 정성껏 글씨만 쓰고 붙일 때 또 잘못 붙이면은 바람에 날라 가고 막 그래요, 그럼 이걸 하여튼 붙여서 완성해서 딱 안 떨어지게 하는 데까지 정성이예요. 요까지 해 놓며는 일년 동안 보면은 그냥 이렇게 좀 빛에 바래도 그냥 운치가 있고…. 조사자 : 올해도 이게 입춘날 아침 새벽에 붙인 거예요? 이명무 : 그럼요. 입춘날 아침 똑 해야돼 그러니까 이거는 저 사진과의 약속이지, 뭐 다른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입춘날 아침에 딱 하면은 그게 ‘아 내가 할 일 했다’ 이런 생각들죠, 그리고 인제 안 하고서 다음날 하면은, 아 이게 항상 찜찜한 게 있을 거 같잖아요. 그래서 부득이해도, 입춘이 추워요, 추워서 그냥 풀이 안 붙고 하는데, 하여튼 여기까지 정성이예요. 매사가 그런거는 정성을 쏟는 게, 다 해서 붙이는 거 까지, 이게 남들 같으면 따뜻할 때 붙이면 쉽잖아요. 그런데 추울 때 아침 일찍 이것도 그냥 입춘날 붙일려면 힘든 거죠, 그러면은 하늘이 어떻게 달리 생각할지도 모르니까(웃음).
□ 제보자 : 이명무(아천동 우미내마을, 1965년 생, 남)
□ 조사일자 : 2000년 9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