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기어가는 용을 두들겨 잡은 기륭둥지 l 민속문화 > 전해오는 이야기(전승)


    이성근 : 옛날에 이촌말이라고 그러는 데야. 이촌말 기룡둥지 이렇거든. 기룡둥지는 저기저 이조 때 인조 때 이괄이가 역적을 부렸거든 그러니까 이괄네 산소를 세원서 파서 강에다 띄워 버릴라고 파는데, 용이 다 됐어. 그러니까 때려잡을려고 하니까, 붙들리지는 않고 물로 못들어가고 이 땅으로 기서, 여기서 역군이 나라에서 몽치로 때려잡았데. 기어가는 용을 잡았다고 기룡둥지, 두둘겨 잡았다고. 오래지도 않아, 지금으로 말하자면 이 백 한 팔 십 년 됐지.
    조사자 : 이괄이 용이 다 될 때 까지 좀더 기다렸으면….
    이성근 : 아 이태만 더 기다려도 됐지. 그래 물로 들어가면 그때는 정권을 바로 잡았지. 땅에서 용이 덜 됐다구. 그 아버지가 그랬지. “날 여기다 산소를 쓰고 십 년 후에 역적을 부리면 니가 된다.” 그랬는데, 그 병조판서 한지가 칠년 만에 정권을 그냥 휘어잡으려고 들이치다가 천지척이야 사흘 용상했으니까. 그런데 그만 그 제 아버지 산소 그렇게 하는 바람에 망했지. 사흘 용상하다가 망했어. 부여로 쫓겨 갔거든.
    조사자 : 아 부여로 쫓겨갔어요?.
    이성근 : 그럼. 아 공주 어가가 인조가 쫓겨 왔다가 도로 정금남이가 이괄이를 들이쳐서 부셨어. 한 삼백년 됐어.
    조사자 : 그 전에 얘기 하셨던 기룡둥지 얘기요. 용, 기어가는 용 때려잡은 거.
    이성근 : 예.
    조사자 : 그 산소가 이괄 아버지 산소였죠? 파헤친게.
    이성근 : 아버지예요.
    조사자 : 그게 어디 있었나요?
    이성근 : 세원요.
    조사자 : 서원?
    황춘를 : 세원, 세원.
    이성근 : 저 미금면에.
    황춘균 : 여기 토평리서, 토평리서 조금 올라가야 돼요. 토평리서 올라가서 올라가면 세원리 다리가 있어요. 세원리 다리.
    조사자 : 세원이예요?
    황춘균 : 세원 다리 바로 위에가 거기에요, 세원 다리. 지금도 거기 다리가 있어요, 돌로 멩근 다리예요.
    조사자 : 구리시가 아니죠?
    이성근 : 거긴 미금면이여.
    황춘균 : 남양주신데 거 다리가 구리시 허고, 거 다리만 건너면 미금시이고 이족은 구리시예요. 거 세원리 다리예요. 세원리 다린 돌로 멩글었어요, 돌로. 이런 돌로 깍아서 멩근 돌이예요. 그건 그냥 다리가 아니예요. 한번 가보세요.

다른 지역에도 전한다는 내용의 말 다음에 다시 이야기가 나왔다.

    이성근 : 여기는 이괄의 산소는 한 삼 백년 밖에 안됐어요. 그 병자호란에, 그 다른 사람들이 모두 죄 애를 썼고 그랬는데, 자기가 더 애를 썼는데, 병조판서로 내직을 시켜줬거든 저 함흥으로 가서 어두가서 병자판서 노릇하라고. 그리고 애를 안 쓴 사람은 모두 내직을 시켜서 벼슬을 시켜주고 그했는데, 이괄이가 화가 나니까 병권을줬으니까 군사를 데리고 그냥 인조를 냅다 디 후둘겨 댔어요. 그래 저 공주로 피난을 갔었지.
    조사자 : 인조가요?
    이성근 : 인조가. 그래 사흘 용상을 하다가, 허허(웃음). 그 정금남이 하고 그 부원수 그 이가 아는 일이 많아서 서쪽 저 무악재 고개는 이괄의 군사고, 동쪽에는 정금남이 군산데, 저쪽에 먼점 군사는 무척 많다고, 병권에 먼점 해놨던거. 여기 신 군인이지, 이 저 정금남이가 헌 사람은 그냥 동네 사람들 모두 모아서 그런 군사니까 훈련도 안 받은 군산데, 계교가 있어 그때. 가만히 보니까 오후에는 큰 바람이 분다고, 바람이. 그리고 아침 나절엔 잔잔하니까, 이괄이 그 큰 바람 부는 것을 알아가지고 장안에서 전부 고춧가루를 연구를 했죠, 모았죠, 수백석을. 모아가지고 전부 군인들을 노놔줄 때, 바람불 때 당장 접전할 때 서로. 이 바람부는데서 풍진에 눈을 뜰 수가 있어요? 그 수백명이 그냥 죄 붙들려 죽었어요, 계교로. 싸움도 못해보고. 아 그 고춧가루 그냥 얼굴에다 뿌리게 되니, 바람이 재차 불으니 눈을 뜰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그때에 이괄이 붙들여 죽었어요. 그래 이괄 아버지가 그랬어요. 그 세원다리 산소를 쓰는데, 거기가 천혜대주고, 용이 될 자린데 임금을 헤먹을 자린데, 여기 쓰거든 십년 후거든 니가 역적을 부리되, 십년 안되면 역적을 부리지 마라 그랬거든요.(조사자: 예) 그 아버지가. 그랬는데 제 아버지를 십년이 못되고 칠년 만에 역적을 부렀거든요. 아버지 말이 정말인가 그러구 그때 병권을 쥐고 서울을 그냥 내쳐버렸잖아요. 별안간 혁명 정부 박정희 모양으로 밤새로 혁명 정부 이룩해서 내쫓았잖아요, 임금을, 아 그러다보믄 이괄이가 용상을 앉았는데 용상이 벌벌벌벌 떨리니 칼을 빼가지고 용상을 찍었다오. 찍으니까 지가 자격이 안됐어 안즉, 용상에 올를 자격에. 보믄 정부는 내쫓고 다 내쫓고 자기가 임금을 허겠(웃음)… 용상이 덜덜덜덜덜 떨리니까 칼로 거길, 거 용상이 떨렸지 몸이 떨리는 걸. 자리에 앉을 사람이 못되거든. 그래가지고 사흘, 나흘만에 붙들여 죽었어, 이괄이. 그래가지고 역적을 몰렸어. 헌데 그 산소자리, 몰리니까 그 집터는 연못을 파고, 이괄이 난 집은 또 그 산소는 역군을 데려서 디리 파니까 용이 다됐단 말이야 손톱 발톱만 덜 되고.
    조사자 : 그게 아버지 산소죠. 이괄이 아버지.
    이성근 : 그렇죠. 이괄이 아버진데. 아 그래 용이 다됐는데 물론 못 들어 가거든 용이 안 되기 때문에 재주가 없어서. 그래 더 있어야 할텐데, 그 미음나루로 해서 이 구리시 여기로 와서 그 백성들이 나라에서 온 몽치로 때려서 기어가는 용을 때려잡아서 그게 기룡둥지여. 지금 시장, 그게 기룡둥지여. 지금 시장.
    김동수 : 그게 이무기예요?
    이성근 : 용이야. 사람이 백룡이 되는 건데, 하얀 용이 되가지고 비늘이 돋혀가지고 그 손톱 발톱이 덜됐다고, 용이. 삼년만 더 있으면 되는 건데. 그래서 이괄이 꽹과리라고 그랬죠. (청중들 웃음) 이괄이 꽹과리지 뭐요. 왕까지 했다가 그렇게 죽으니, 꽹과리지. 그래서 이괄이 꽹과리지. 뭐 사흘 더, 삼년만 더 기다렸으믄, 참으믄 됐어. 근데 매사가 어디든 그 때가 돼야지, 시간적으로 금방 급하게 되면 안돼. 참을건 참아야지
    조사자 : 세원리가 바로 요기?
    이성근 : 지금 그 산소 있는데, 조말생이가 갖다가 썼어요. 그 자리에 다가. 거기가면 그조, 좌청룡이 이렇게 되 있는데, 저 동열개가 다 뵈거든, 저기. 등열개 물이 덕소로 돌아서 이 앞으로 들이닥쳐 가지고 옆으로 빠지는 건 안되요, 그래 조화가 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임금을 헌다 그랬어요. 그랬는데 그만 거 참지를 못해서 망했지. 그래 이괄이 꽹과리,

조사자가 “수중명당 얘기는 모르세요?” 했더니, “물명당요?” 하면서 막 웃더니, 조사자에게 그 얘길 알면 좀 가르쳐 달라고 했다. 조사자가 모른다 하면서, 그런 얘기가 있다고 하여 혹시 아시나 해서 묻는 것이라 하니, 제보자는 “아니, 물명당이래는 건 그렇거든요. 덕을 닦음으로써 언짢은 데다 둬두, 거가 명기가 들어서 명당자리다 그래는 거예요. 덕을 안 닦았으믄 좋은 데 찾어야 좋은 게 내 복으루 안 오구, 덕을 닦은 일이 있으믄, 그 냥반이 언짢은 데들어두, 덕을 닦는 냥반은 천신이 도와줘서 닦은데루 된다 그거라구.” 조사자가 다시 “그 뭐 수중에다가 뭐 죽은 다음에 넣어 노라 그랬다가 뭐, 아들이 넣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알아가지구 파 보니까 용이 될려다가 말았다는 그런 얘기도 있던데요.”하니, “게, 이괄네 산소는 그랬잖우….” 하면서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게 이괄네 산소는 그랬잖우. 이괄이 꾕갈래.
    조사자 : 그런 얘기가 여기 있어요?
    그럼요, 이 제 이괄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그 이괄이더러 그랬거던. 십 년이 지내믄 이, 큰 역적질, 나라에 임금을 헌대든지 그렇게 역적을 부릴랴구 했는데. 그 인조 적에 말이야, 인조대왕 적에, 벵자호란 난리에, 그 사람이 이괄이가 병조는 외, 저 먼디다 병조판사를 내주거든. 다른 이는 죄 공이 있어 가지구 안으로 나 집을 시키는데, 자기는 외직으로 보내니깐, 가만히 보니깐 역심이 난단 말이야.
    ‘에이 참, 옘병헐 녀석 나는, 그 나리에 그렇게 앨씨구 해두 외직으루 주구, 다른 사람은 나처럼 애쓰지두 않는데 내직을 씨구. 에이, 반심을 먹어야겄다’하구 그 회의를 품었네. 회의를 품어가지구 여기 서울을 그냥 들어오네. 무악재 고갤 넘어와서 다리 그냥 서울을 들이치니, 아, 임금이 뭐, 벨안간 으떻게 해? 그래니깐 저 부여루 달아났다구 인조가 급허니깐. 인제 그리 가서 계신데, 그 해 우리 할아버지의 이, 정금남이라구 하인이 있어. 하나가. 하인. 그 이괄이가 그렇게 역적질이 허니까 그 정금남이가 그 때 부원수라구. 부원수루 있는데, 가만히 보니깐, 이 눔이 역적질을 허는데, 인제 잡아야 헐 텐데, 싸움을 하다 고만 실패를 했어요, 아 그래, 그래니깐 계교가 아는 일이 많아서, ‘에이, 가만히 있어라. 오늘은 저 눔이 서쪽에서 내려올 데니깐, 내일은 동풍이 불거야. 꼭.’
    근데 이 곱두 부분을 갔다가 저 놈이 다 차지를 했으니깐, 이 짝에선 사람 많이 모으질 못허구, 훈련을 잠깐 해 가지군 그냥, 고춧가루를, 고춧가루를 한 백 석을 맨들었단 말야 그냥. 빠아서 그냥 빠아가지구 죄 군사들은 노놔 주구. 그냥 동풍 몹시 불 때 냅다 뿌리구 쫓아 들어가는데, 만멩이믄 뭐 해? 고춧가루루 냅다 뿌려서 바람에 휙휙 날라가니까, 지금으루 치면 독가스 뿌리는 거나 마찬가지잖우? 아 그래구, 바람 부는데 쫓아가면서 보니깐, 이눔들 눈깔이 멀어서, 옛날엔 당상접전 하니깐 서루 만나서 찔르는데, 뭐 헐 수가 있어? 그냥 망했지. 이괄이 군사가. 게 이괄이가 역적 됐잖우? 성공 못 했으니까, 사흘 용상했거든. 게, 용상을 다 칼루 찔렀어, 게 괜히 붙들구 때가 안 되는데 용상이 떤다구, 용상을 칼루 배가지구 찍으니까, 용상이 제 몸이 떨려서 그러는데, 인재가 안 되니까, 그래 가지구 역적으루 몰려서, 저 서원 평주대(?)에다가 갖다 이괄 아버지의 산솔 썼어요.
    조사자 : 어디에다가요?
    서원. 이 동네 집이 말이죠. 이괄이 산소자리 참 좋읍디다. 아 거길 팠단 말이야, 혈을 끊어버리구. 파니깐, 손톱, 발톱이 다 됐어, 용이. 근데 물론 못 들어가게 마련이야. 손톱, 발톱이 덜 돼서. 그래 손톱 발톱이 다 됐으믄, 물루만 들어 갔으믄, 한강으루 뚫구 나갔으면 임금을 허는 건데. 십 년 후에 역적을, 역적질을 해라 그랬는데, 칠 년에 했으니까 손톱, 발톱이 못 됐어요. 그래서 거기서 왕산내루 건너 와서, 게서 여기 구리시 시장 있는데 거가 기룡두둘기거든. 그 나라에서 거기 기 나오는걸 그냥 때려 잡았어. 그래 기룡두들기야. 그것두 다 역사에 있는 얘기지 뭐.
    강한철 : 기륭둥지?
    기룡둥지야. 아유 여기 저 구리시장께 기룡둥기 아냐? 거가. 기어가는 용을 때려 잡았다 그거야. 그래 기가는 용이야. 기룡둥지야. 개울을 건너와서. 게 이괄네 산소였는데, 난 더 몰라. 아유. 고만헐테야.

□ 제보자 : 이성근(동창마을, 1917년 생, 남)
□ 조사일자 .2000년 10월 16일
□ 참고문헌 : 이수자, 「설화 화자 연구, 1998, 145~1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