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용마산 아기장수 l 민속문화 > 전해오는 이야기(전승)


    김무희 : 여기 엑께산요, 용마산이 거기다 일본놈들이 와서 저 쇠말뚝을 박아 봤어요. 뎅구알이 뭐 이만한데, 우리 갖다가 절구 공이도 했는데.
    아 들 : 그게 정기 끊는다고 박아놓은 거야, 맥에다가.
    김무희 : 아 그래서 거기서 그걸 죽이기 때문에 말이 나와서 울었대요, 장사를 죽여서. 말이 나와서 피를 토하며 죽었대요.
    조사자 : 일본놈들이 박아서요?
    김무희 : 그럼 일본놈들이 박고 그냥 거기서 장사가 못나니까. 그래 거기가 용마산이예요, 엑께산, 용마산요. 그래서 이름이 난 거예요. 그냥 대포질만 디리 펑펑하고 그냥. 이만큼씩 해요, 대포 껍데기가. 그걸 갖다가 쇠공이 절구 만들었어요. 그래서 거기가 용마산이예요. 장사가 날 곳이라 해서.
    이성근 : 그건 고려땐 데, 그땐 이 땅이 여기가 고구려 땅이라고, 여기가 지금, 우리가. 그때 고구려 때 저 사람이 있었죠. 그장군이, 바보온달이 성이 있잖아요 거기. 그거 밖에 없죠, 뭐 이 주변에 저기서부터 원주서부터 이리 내려오면 이게 이짝으론 고구려 땅이에요,
    조사자 : 용마산에서 장수 났다는 이야기는 없었어요?
    이성근 : 용마산에선 장수 난 건 없어. 말이 하나 났어, 고려 때.
    조사자 : 말이요?
    이성근 : 고려때. 말이 하나 나서 용마산이지 장수날 건 없어요.
    조사자 : 말이 어떻게, 그건 어떤 이야기예요?
    이성근 : 허허 근데 고려 때요. 그때도 아마 장사가 하나가 있었데요. 근데 그 거기가 그러니까 면목동 말고 여기 저 향당동 있잖아요.
    황춘균 : 장현동.
    이성근 ' 향당동이야.
    조사자 : 행당동.
    이성근 : 향당동.
    김동수 : 한양대학교 있는데.
    이성근 : 그래 거기가 향당동 아니야. 장안동 허고 거기가.
    이성근 : 거기가 그 전에 전부 밭이거든요, 전부. 근데 한 집이 소를 했는데, 거 어린애가 끌고 댕긴대요, 소를 요. 그 장사예요, 가만히 보니까. 아 그 벌판으로 소를 뜯기러 간다면 그놈의 소가 무척 말르드래요. 아 그 가만히 저희 아버지가 끌고 나가 갖고는 그 놈이 뜯긴다고 그러면은 그 놈이 살이 찌서 들어 올텐 데 소가 점점 패래드래요. 아 이게 웬일인가 하고 이렇게 봤더니, 그 애가 뿔 위로가 올라서 드래요. 올라섰다가 제주를 펄떡펄떡 넘고 배떼지 밑으로 들어갔다, 훨훨 아 그러구 그냥 채찍으로 디리 혼케 치드래요, 벌판에서. 그러니까 거기풀밭이니까 바깥에서는 안 보이거든요. 거기가 예전에 수수도 많이 싱겄지만, 그 저 벌판에서 재주를 넘는데, 훌훌 날드래요. 배때기 밑으로 들어가고 그냥 아무튼지 뿔위로 가 재주를 팔탁팔탁 넘고 그러니까, 이 큰일났다 허고. 그래. 그래가지고 그걸 집안에 그런 사람이 나면 망한다고 그걸 죽였다잖아요, 애를요. 기름통에다 눌러서, 집안에 묻었어, 아 그래가지고 액께산에서 용마가 나가지고 용마가 펄펄뛰고, 피를 토하고 울었는데, 그 집안이 싹 망했데요. 그런 얘기 밖에 못 들었어요. 그래서 용마봉 용마봉 그러잖아요. 아 원래가 그렇게 날래고 그런데 아 왜 죽입니까, 가만두지.
    황춘균 : 자기 잘 살려고 죽였겠죠.
    이성근 : 잘 살긴 집안이 망했다는데.
    조사자 : 역적질 할까바….
    이성근 : 예 그래서 겁이 나서 죽였대요. 그런데 고만 그 집안이 다 망해버렸대요.

□ 제보자
김무희(동창마을, 1917년 생, 여)
이성근(동창마을, 1917년 생, 남)
□ 조사일자 : 2000년 10월 4일, 10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