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군인으로 변한 동구릉 나무와 건원릉의 갈대군사 l 민속문화 > 전해오는 이야기(전승)


건원릉은 다른 능과는 달리 봉분에 잔디를 심지 않고 억센 갈대를 입혀 놓았는데 그 이유는 태조 이성계는 젊은 시절 장수로 있으면서 전쟁이 일어나 적과 싸움이 붙으면 갈대밭에서는 패한 적이 없어 항상 승리하였다. 또한 살아 있는 동안에도 고향인 함경도 영흥땅의 갈대모습을 항상 동경하여 평소에도 그 곳의 갈대를 가져다 자신이 죽은 후 무덤의 봉분에 덮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효성스런 태종이 그대로 이행한 것이다.『대동지지』 권3, 양주 편을 보면, 고언백(高彦伯)이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이 자리하고 있는 검암산을 근거지로 하여 왜적의 침입에 대항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주목된다.
검암산 고루(劍岩山 古壘)는 산의 서록 봉우리에 2곳이 있다. 선조 때 임란 의병장 고언백이 쌓은 것이다.

교동 향리 고언백은 일찍이 왜적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하다. 도원수 김명원을 좇아 영장(領將)이 되어 왜적의 목을 벤 공이 있었는데, 양주로 돌아가기를 자청하여 병사를 모아 적을 치니 왕이 양주 목사를 배수하고 능침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언백은 산의 정상 험한 곳에 자리를 잡고 기회를 보아 왜적을 초격(抄擊)하였으며, 능침에 복병하여 기회를 엿보아 사살하였다. 이때 토적이 사방에서 일어나 천 또는 백으로 무리를 이루었는데, 양주가 가장 심하였다. 고언백은 구리에 소재하고 있는 건원릉을 비롯하여 여러 능침이 왜적에 의해 훼손되지 못하도록 보호하였다. 한편, 건원릉의 주산인 검암산의 정상에 2개의 고루를 세워 왜구의 동태를 살피고 백성들과 연계하여 이들로 하여금 적의 정보를 탐지케 하여 양주 일대에서 약탈행위를 자행하던 왜병을 유격전으로 격퇴하였다.
『선조실록』에는 이때 고언백이 거느리고 있던 병사를 2,000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병인) 한편 구리시에 전하고 있는 전설 가운데 건원릉과 관계된 것 중 이때 왜적이 건원릉에 3번씩이나 불을 지르자 모두 바람이 불어 불을 꺼버려 왜병이 건원릉에 접근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한 전설과 밤에는 능 앞에 있는 비석이 장군이 되고 잔디는 군사가 되어 왜병을 물리쳤다는 전설은 고언백의 검암산에서의 활약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은 고언백의 양주에서의 임무 중에 능침의 보호가 포함되어 있음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성근 : 그분이 함흥 여흥서 났거든, 여흥. 여흥 사람인데, 그때 인제 애들 적에 그 양반이 저걸 좋아 했데요. 이 훈련허는 거, 그 훈련허는데 요런 애들끼리 병법을 정해 가지고 훈련을 했단 말이예요, 한 열댓명이. 그런데 애 하나가, 그 날은 저의 어머니가 옛날은 머리를 올려 땋지 않았수, 모두. 댕기꼬리를 땋는데, 저 어머니가 과부집 어머닌데, 머리를 땋느라고 빗겨 보낼라고 고만 늦게 보냈단 말이예요. 늦게 보내니까, 우리도 애들일 망정 군법으로 허믄 사람을 죽이는 건데, 너 죽어라 그러곤 목을 잘랐단 말이예요. 군법 시행한다고. 그러니까 그 집안에서 요놈으 자식 죽일놈이라고, 남의 자식을 죽였다고 저놈의 자식이 그랬다고 그래, 일곱살이지 이렇게 먹어서, 갈 때가 있어야죠. 그냥 쫓아오니. 그러니까 함흥 그 여흥벌로 달아나 가지고, 갈대밭으로 뛰어 들어가서 숨었단 말이예요. 거 이 당초 찾을수가 있어요? 그래 왕근 서광사로 달아났어, 그 양반이. 그래서 그 나 죽더라도, 죄의 몸이니까. 죽은 후래도 갈대 때문에 내가 살았으니, 갈대를 내 산소 위에다 갖다 써라. 이래가지고 그 손으로 헌거예요. 사람이 늘어서서 손으로 갖다 내려 온 거예요. 그리고 갈대를 아무 때나 안 하는데, 인제 세상이 망했으니 인제 갈대가 아니고 새야, 억새. 갈은 없어졌어요.
    조사자 : 지금은 다….
    이성근 : 없어요. 그래서 일년에 한 번씩 가꿨어요. 갈대야. 그래서 헌 거예요.
    김동수 : 옛날에 벌초할 적에 못 깍게 했었잖아요.
    이성근 : 못 깍어. 안 깍어. 일 년에 한 번, 한식 때에 가서 깍았지. 한 번 깍으면 안 깍어,

□ 제보자 : 이성근(동창 마을, 1917년 생, 남)
□ 조사일자 .2000년 10월 16일
□ 참고문헌 : 이수자, 『설화 화자 연구』, 1998, 420-421쪽.
구리시 구리문화원, 『구리의 역사와 문화』, 1996, 250~251쪽.
구리시 구리문화원, 『구리시지』(상), 1996, 147~1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