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기타 l 민속문화 > 전해오는 이야기(전승)


이 부분의 전승기록은 이수자씨의 『설화 화자 연구』에 나온 기록 중, 구리시와 관련된 부분만을 발췌한 것이다.

1) 왕숙천과 퇴계원의 지명 유래

설화를 조사하기 위해 동구동의 경로당에 처음으로 들렀다. 그 곳에는 여러 노인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특히 이성근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잘 하시는 것을 보고 조사자가 제보자에게 “왕숙교는 왜 왕숙교라 하는지” 물으니 “왕숙천에 다리가 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그러면 왕숙천은 왜 왕숙천이라 부르게 되었는지” 물으니 “그건 내 얘기하지.” 하면서 들려준 이야기다.

    고려 말 때 이성계 그 냥반이 서울루 오셨는데. 그 아드님허구 서루 맞질 않았어. 싸움을 했어. 아드님허구. 이성계 아드님허구. 근데 작은 선생이, 이성계씨 작은 부인 강씨 부인이 애기를 낳았거든, 그런데, 근데 이성계씨 큰 아들은 한씨 부인에게서 낳구. 그래서 가만히 보니깐, 이방원이가 가만히 보니깐 그 쪼그만 것, 거시거 남은 걸 임금을 주구, 자기는 임금이 안 차례 올 것 같애. 그래서 이렇게 용상에서, 임금이 안고, 그 작은 몸에서 난 아들은 가지구 구엽다고 입을 맞추시구 그러길래 이방언이가 보니깐 화가 난단 말이여. 암만 해도 임금을 저거한테 전할 것 같애. 자기한테 안 전하구.
    “아버지, 그 동상 구여운데 지가 좀 봐주겠습니다.”
    그래니까,
    “앗따, 그럼 니가 보아라.”
    그래니까, 두 다리를 잡구 패디기를 쳐 버렸다구 임금이. 아 그래니깐 금방 죽잖어? 아 그래 으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옥새를 쥐구 있다가 그냥 후려 갈겼는데, 아휴 옥새, 그걸 쥐구 그냥 팽갤쳤는데 두 손으루 터억 받으셔. 그 냥반이, 이방언이가. “인제 저한테 전합쇼.”
    그래구 두 손으루 택 받아 놨으니, 뭐. 임금은 옥새만 뺏기면 임금이 아니거든. 그런데 애들 모냥으루 도루 달랠 수가 있나 으떻게 해? 함경두 함흥으로 달아 나셨어, 그분이. “에이! 나 채빌 놔라. 나, 함흥으루 가겠다.”
    그래 채빌 놓구 함흥 가서 있다가. 이제 여길 오는데 당췌 와? 그 어른이. 아들이 뵈기 싫어서. 그래서 인제, 벨 사람이 다 가두 안 오구 안 오구 함흥차사라구 그랬어. 가기만 하면 죽여 버렸거든.
    “이 눔 자식, 그 자식이 보낸 사람 그냥, 뵈기두 싫다. 너 가라.” 그러군 뒤루다 활을 쏴서 죽구 죽이구 그래, 함흥차사야, 그게. 그런데 이제 나중에 다른 냥반이 갔어. 그 냥반하고 아주 절친한 친구가. 그래 암송아지 하날, 그게 암소허구 송아지갓 난 걸 끌고 갔어, 그 냥반이. 끌고 가는데 하나는 여기다 매구, 요기다 맸어. 즈 아버지를 모셔오라 그랬는데. 그 냥반이 계시는데 요기 매놓구, 요기다 매 놨는데. 아, 그냥 소리소리질르네.
    청중 : 누가요?
    소가. 소는 새낄 보구 야단이구, 새끼는 에밀 보구 야단인데 이상하다 말이야. 임금이 가만히 그 데리고 온 사람
    “아, 저건 무슨 소리유?”
    그래니까,
    “글쎄 그게 에미소가 새낄 보구 저렇게 야단치구 새끼가 에밀 보구 서루 저렇게 야단을 칩니다.”
    그래니까,
    ‘어허, 내가 자식을 두고 오기 때문에 금수만두 못 허구나.’
    이러구 생각하셨단 말이야. 임금이.
    “에이 가겠다.”
    그러구,
    “채빌 놔라.”
    그리구 함흥에서 서울에 내려 오거든. 서울로 들어오는데, 여기 저, 요 위에 광릉내가 있어. 광릉내 위에, 저 위 저 내광리라구, 내광리 거기 오다가 최숙 : 광능의 내광리에서? 응. 쉬서 오시다가 인제 서울루 들어오시는 거야.
    아, 그런데 이방언이가 임금이 돼가지구 지 아버지 대신 옥샐 뺏었으니까 그 연을 타구 와요, 연. 연이라는 게 또 타구 오는게,
    최숙 : 가마.
    그 연 타는 가마가 또 따루 여럿이 메는 게, 그걸 타구 응, 기고만장하게 큰 우산을 받고 이러구 와. 또 그래 보니까 가만히 보니까 들입까지 오시다 보니까 아주 괘씸하다 말이야. 또 분해. 삼각산을 보니까 분허구, 아들이 기고만장하게 온 것 보니까 분허구, 몸에서 당장 활을 내서 이 방언의 등떼기를 향해서 쐈는데.
    최숙 : 태조가?
    응. 태조가 쐈는데, 분허구. 바로 맞어 들거라구 쐈는데, 아 안 맞어. 제기, 옘벨라서 한 번에 쏴서 안 맞으니까, ‘너두 하늘이 냈구나.’ 그러군, 그냥 활을 가지구 퇴! 하고 퇴계쪽으로 다시 올라갔어. 저기 내광리루 그래 거기 가서 여덟 밤을 자구 내려 오셨어. 그래 개울에 오셔서 낚시질을 하셨어.
    최숙 : 태조가요?
    그래 여기 당이 있어. 그 냥반 낚시질을 한 거 하날, 여드레 동안을 거기서 낚시질을 하시구 계셔서. 그래서 왕숙천이라구 그랬어. 왕이 거기서 있었다구 해서. 다른 건 아니야.
    최숙 : 그러니까 거기가 상륜가 봐요? 내광리가 있는 데가?
    거기 죄 놨거든. 그 냥반, 거기 가보면 한 간을 제(지어)놨어. 여드레를 낚시질을 허시구 그랬다구. 그래 왕숙천이라구 그랬어. 거기서 난 것두 아니구.
    최숙 : 퉤! 하고 침을 뱉고 다시 간 거예요? 퉤!
    그럼. 퉤! 이러구. 그래 물러갈 퇴자야. 침을 뱉고 물러 가셨거든.
    조사자 : 그래서 거기가 퇴계원이예요? 이름이요?
    그럼. 그래서 퇴계원. 퉤! 하구 드럽다구 그래서 왕숙천이 됐다 그거야 뭐. 아 이제 고만 얘기해야지. 임금이 거기서 주무시구 놀았으니까.

□ 참고문헌 : 이수자, 『설화 화자 연구』, 1998, 39~42쪽.

2) 용의 혈 건원릉

조사자가 “저쪽에 가면 아차산이 있는데, 왜 아차산이라고 그랬는지 그 유래를 아시느냐”고 물으니 모르는데, “그건 역사에도 기록이 없는 것”이라며 모른다 했다. 이어 계속하여 ‘동구릉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동구릉 이게, 이리 내려가서 건원능 잡을 때, 그 안배가 돼서 아차산이, 지가사에서 그랬거든. 동구릉 자리가, 그 건원능이 용의 설(혈)인데, 용의 설인데, 그 짝을 내다보면 아차산이란건 누운 용이 물 속에 들었다 그랬거던. 이 왕숙천이 일리 돌리 싸구, 조 쪽엔 중랑천이 돌리싸구, 저쪽엔 한강에서 물이 용이 들어서 무진무진 조화가 나갔다 그랬어, 저 쪽엔 한강 아니여? 저쪽으루 한강이구 이 양쪽에는 중량교가 돌리 싸구, 여긴 왕숙천이 돌리 쌓거든, 여기가. 그래서 건원능 자리가 좋다 그랬어.
    조사자 : 아, 용의 혈을 물이 둘러싸고 있는 거니까 좋은 거예요?
    용이 돌리 쌓잖우? 누운 용이 물 튀기는 형상이다 그랬어.
    최숙 : 무슨 형상요?
    누운 용. 용이 누웠는데 물을 뒤기는 형상이다 그랬어. 아차산이 이렇게 됐다 그랬어. 건원능 산소 쓰는 게 그렇게 됐다구 그랬어.

□ 참고문헌 . 이수자, 『설화 화자 연구』, 1998, 43쪽.

3) 궁말의 지명 유래

앞의 이야기를 듣고 조사자가 “아유, 모르시는 게 없네요.” 했더니 옆에 있던 이금석 씨가 “아, 이 분은 역사를 모르는 게 없어요. 그래 우리가 여기 저기 놀러 다닐 때 이 분한테 역사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칭찬의 말을 했다. 이성근 할아버지가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겠다”고 했는데, 조사자가 “저 아래쪽에 ‘궁말’이라는 마을이 있던데 그건 왜 그래요?”라고 물으니 곧바로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궁말요? 나라의 궁이 있어 궁말이지. 나라 임금의 따님이요, 그 소년에 돌아갔으니까 갖다가 모셨으니까 인제 궁말이라구 그랬어. 궁을 써서
    조사자 : 아, 그러니깐 나라 임금의 딸이 죽어서 여기다가 묘를 썼어요? 산소를요? 여기다 능을 썼다가 파 갔지요. 금곡으루. 그래서 궁말이예요. 그럼 뭐,
    조사자 : 궁말, 그럴 때 ‘말’은 무슨 뜻이에요?
    그 앞에 마을이 있다 그랬어. 궁 앞에 마을이 있다구. 거, 지금 시청이 있잖우? 시청이 있구 거기 집들이 있어. 그래서 궁말이다. 원래는 인창린데 옛날에 여기는 동창, 거기두 동창. 다 그런데 지금은 부서가 갈라졌지요, 지금두 다 구리시가 되지 않았우? 이렇게 된 거예요.

□ 참고문헌 : 이수자, 『설화 화자 연구』, 1998, 44쪽.

4) 동창의 지명 유래

이야기를 하는 도중 옆에 있던 이추석 할아버지가 제보자를 가르키며, “강화도 같은데 가면, 몽고군이 들어왔는데 그런 걸 어떻게 물리쳤다는 것이 저 사람 머리속에 다 들어 있다”고 하면서 “그래서 저 분은 아주 특별하다”는 이야기로 제보자를 칭찬했다. 조사자가 할아버지에게 “본관이 어디시냐?”고 물었더니 경주라 하면서 경주 이씨는 아주 오래된 이씨이고, 여기에서 전주, 아산, 덕수, 원주, 고양, 오계, 재령, 함평 이씨가 나왔기 때문에 함께 결혼하면 안되고, 청해 이씨는 이성계 때에 청나라에서 나온 퉁두란으로부터 시작된 이씨이기 때문에 결혼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동성동본끼리 결혼하면 변고가 많고, 인물이 나지않는다는 말도 했다. 동창은 경로당 앞쪽에 있는 지명인데, 유래를 물으니 들려준 이야기다.

    그저 먹고 살 거는 줘요. 지금으루 말하믄 둬 가마 주구, 동창이라는게 창고 창자야.
    조사자 : 아, 동창에 창고가 있어서 나라에서 월급을 줄 때 거기다 쌓아 놓고….
    곡식을 쌓아 놓구, 거기서 참봉이 누가 멧 가마 누가 멧 가마 다달이 줘요, 그래서 동구릉, 그리구 동창이예요. 동구릉, 동창 이랬다구.
    최숙 : 곡물이라면 쌀로 줘요?
    쌀루 줬지.
    최숙 : 쌀 두세 가마예요?
    두 가마. 아니 쌀을 찧서 주지. 시골서 용공을 이리 바치거든. 그러면 창고에다가 산더미같이 싸 놓구 한 달에 한번씩 요를 타는 거예요. 요, 요라고 그했어요. 요. 명칭이 요지.
    최숙 : 아, 한달에 한 번….
    네. 한 달에 한 번씩 먹구 살 걸 주지. 그러면 뭐 거 맨몸으루 다니우? 돈 주구 또 쌀 주구 그런 바람에 능에 댕기지.
    최숙 : 일이 고되거나 그러시지는 않으셨죠?
    아유, 펜하지 뭐.

□ 참고문헌 이수자, 『설화 화자 연구』, 1998, 45-46쪽

5) 빈대절터

조사자가 이 근처에 ‘빈대절터’가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빈 절터?’ 라고 하면서 그런 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조사자가 “아니요, 왜 빈대를 잡으려고 절을 태웠다는 그런 이야기 말이예요.” 하니까 “빈대는 없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옆에 있던 이금석 써와 이추석 씨가 말을 도와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빈대는 읎구 초가삼간이 다 타두 빈대 타는 맛이라구 그 얘기뿐이지 어느 절에서 그랬다는 건 몰라. 그건 몰라요. 말루는 있어. 그 집에 빈대가 많아서 불을 질러서, 그 빈대 태우는 맛에 그냥 불을 질렀다구 그런 소리는 있는데 그건 무슨 소린지 그건 몰라.
    이금석 : 그런 얘기 내가 누구한테 들은 거 같애. 어디 절인지 뭐 기둥을 뭐….
    빈대기둥이라구. 빈대두 죽구 그랜다구 그런 얘기 있는데 그건 몰라.
    조사자 : 이 동네에 있어요?
    읎어요 그런 건. 그 소린 안 났어.
    이금석 : 빈대가 많다는 얘기지 그러니깐.
    이추석 : 옛날에 빈대 많았지.
    불을 질렀다는 건 못 들었어. 빈대기둥이라구.
    이추석 : 육이오 전에는….
    빈대가 많았지. 벼룩이두 많구 이두 많구.
    조사자 : 이두 많았잖아요?
    많구말구. 아 육이오 때 아주 혼났는데….
    이추석 : 육이오가 나구 미군이 들어 와서 인제 뭐 디디틴가 뭐 뿌려주구. 그래두 많았지, 인제 그 육이오 때 어느날 보니까 정말 빈대가 다 없어. 초가삼간이 다 타두 빈대태는 재미라구.
    쫙 없어겼지. 그거 어디 개와장에 불을 놨는데 개와장에 그저 있단 그런 소리는 들었는데 어딘지 몰라.
    조사자 : 저기 우미내쪽에 산 어디에 그런 얘기 있다는….
    읎어요 그런거. 못들었어요.

□ 참고문헌 : 이수자, 「설화 화자 연구], 1998, 83-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