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아천동 우미내마을 대동고사 l 민속문화 > 마을 신앙의 실태


우미내마을은 지도상으로는 아천동으로 되어있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교문 1동으로 되어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14년에 양주군 구지면 지역을 구지면의 이문동과 배교리 전부, 인장리 일부를 병합하여 교문리라 하고, 아차울과 우미천리 전부, 토막리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아천리라는 지명으로 구리면에 편제되었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3호로 구리면이 구리읍으로 승격되었고, 1980년 4월 1일 법률 제3169호로 양주군 구리읍이 남양주군 구리읍으로 분리되었다. 1986년 1월 1일 구리읍교문리가 구리시 교문동으로 승격되었고, 1995년 3월 13일 구리시 교문동이 지금의 교문1동과 교문2동으로 분리되었다.
법정동으로는 교문동이고, 교문2동은 행정동이다. 1986년 1월 1일 구리읍에서 구리시 승격에 따라 아천리와 교문리가 합쳐져 행정동 교문동이 되었으나, 1995년 3월 13일 교문동 일부와 아천동 전 지역이 교문1동으로, 그 외의 지역은 교문2동으로 개편되었다. 현재 우미내마을의 입구에서 마을의 명칭 기원을 알 수 있는 비석을 발견하였다. 그 비석에는 “우미내마을은 마을 주위의 산이 바위산임에도 불구하고 소나무가 잘 자라고 베어내도 움이 잘 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온다. 또한 우미내 계곡이 소의 꼬리처럼 가느다란 모양을 하고 있어 한편 우미천(牛尾川)이라 하였다고 한다. 1912년에 발행된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우미천이라고 표기되어 있다”라고 쓰여 있다. 우미내에는 지금까지 마을에서 모시는 공동체 신앙으로서 <서낭당>이 존재하고 있으며, 여기에 <장자못>설화까지 결부되어 있어 전형적인 서낭신앙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1) 제명

서낭제

2) 당명 및 형태

서낭당이라 하며, 우미내마을 입구에서 검문소를 바로 지나 구리시에서 워커힐 쪽으로 가는 비냥고개(혹은 서낭고개라고도 부른다)를 넘어가는 도로 오른쪽 녹지에 조그만 당집이 있다. 서낭당 위로는 금줄이 처져 있고 금줄 사이사이에는 지전(紙錢)이 꽂혀 있다. 당집 위 부분에는 적색 · 백색 · 녹색 · 황색 깃발이 꽂혀 있는데, 황색 깃발은 깃대가 꺾여 있었다. 검정색 깃발은 보이지 않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깃발 색깔로 보아 오방색(五方色) 깃발을 모두 갖추어 꽂았던 것으로 보인다.

3) 신격 및 신체

상반신만 있는 여자의 흉상(胸像)으로, 본래 있던 것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에 의하여 한강에 버려졌으며, 현재의 것은 10여 년 전에 새로 만들어 모신 것이다. 현재 당집을 짓고 그 안에 석상을 모셔 두었다. 여자의 흉상은 이곳에 있는 장자못의 설화에 나오는 부자집 며느리의 상으로 전해지고 있다.

4) 제일

마을 ‘대동고사’는 매년 음력 10월 초사흘 안에 벌어진다. 혹 마을에서 초상이 나거나 부정이 생길 경우에는 한 달을 연기해서 음력 11월에 한다. 날짜를 정하는 것은 음력 섣달 그믐께쯤 일책 잡아둔다.

5) 제주

제일 5일 전에 생기복덕(生氣福德)을 보아서 깨끗한 사람으로 제주(祭主)를 정하고, 제주를 중심으로 해서 음식을 준비하고 마을 사람들은 이를 도와주면서 대동고사를 드린다. 지금은 보통 마을 통장이 제주를 겸하고 있다. 보통 대동고사는 마을 토박이들 중심으로 치러지고 있는데, 제주를 비롯하여 참석하고 싶은 사람은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다. 그러나 부정한사람만은 참여가 허가되지 않는다. 일단 제주로 선정되면 개고기를 먹지 않으며, 상갓집에 도가지 않는다. 제일 전에 출산이 예정된 여자는 마을밖에 나가서 출산을 해야 한다. 현재에는 대동고사의 전통이 많이 약화되었으나, 금기만은 엄격하게 지키는 편이다.

6) 제비

각자 정성껏 낸다. 적게는 5,000원에서 10,000원 정도를 내며, 외지인들도 참여하고 있으나, 동네에 살더라도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일체 참여하지 않는다.

7) 제차


옛 장영자 별장 앞 오른쪽 산비탈에 있는 도당나무에 치성을 드리고 난 후, 서낭당으로 옮겨서 서낭제가 치러진다. 축(祝)은 따로 읽지 않고, 먼저 대동 소지를 올리고 그 다음에 집집마다 개인 소지를 올린다. 소지 올리기가 끝나면 보통 제주 집에 모여서 올렸던 제물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마을일에 대하여 논의를 한다.
이때 제주를 비롯하여 서낭제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부정한사람은 스스로 불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