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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재마을 산치성 증언채록

사노동 안말에서 산치성을 조사하다가 이웃에 있는 언제마을의 경우 독립적으로 산치성을 지낸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 제보를 근거로 하여 언재마을 경로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경로당에 계신 어르신들은 마을에서 산치성을 지낸다는 것을 인정을 했지만, 그 장소를 좀처럼 알려주지 않았다. ‘거기 마음대로 못 올러가, 못 올러가. 거기서 낭구 하나 못 꺾어’라며 산치성의 대체적인 내용은 물론이고, 장소마저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조사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겨우 어르신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난 후에야 마을 산치성 실무일을 맡아보고 있는 통장 함경환 씨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통장 함경환 씨가 알려준 산치성 장소는 마을 뒷산 정상에 있는 바위였다. 마을에서는 이 바위를 ‘산할머니’라고 부르면서 모시고 있다. 최근에 불이 나서 주변의 나무가 온통 검게 그을려 있었고, 바위 둘레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함경환 : 그래 가지고 철조망도 없었어요. 이렇게 돌 있었고 없었는데 그게 그거 헌지가 한오 년, 오 년 됐지. 거기 올라가 가지고 오줌도 마음대로 못 누게 허고, 거 제지를 많이 했지,

이 산할머니를 위하는 마을 공동의 제의는 이웃 사노동 안말, 두레물골, 양지말 공동의 산치성 바로 다음에 벌어진다.

    함경환 : 우리가 초 사흘날 지내거든, 살일날, 음력 시월 삼일날. 시월 삼일 날 우리가 지낸다고.

원래 언재마을도 사노동의 다른 마을과 함께 산치성을 지냈었다고 한다. 옛날부터 이웃의 안말, 두레물골, 양지말 등과 함께 공동으로 산치성을 지내오다가, 해방되기 바로 직전부터 따로 지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제보자 함경환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함경환 : 거기서(조사자 주 :사노동 산치성 지내는 당집) 한데 지냈었는데, 여기 사노리가 네 동네거든 동네가. 네 동네가 한데 어울려 가지고 같이 다 비용을 같이 들여 가지고 지냈었거든. 그런데 여기가 인제 우리도 산을 등지고 있으니까, 우리도 뒤에 할머니산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따로 지내야 된다. 그래 가지고 노인네들이 그래가지고 지내게 된 거지.
    조사자 : 그게 한 몇 년전부터 그렇게 지내게 된거죠?
    함경환:이게 우리 어려서부터 계속 지냈으니까뭐, 오육십 년 이상봐야지. 별다른 건, 우리도 자세한 건 몰라 여태까지 노인네들이 해와오셨던 거니까.

언재마을의 공동제의는 ‘산치성’ 또는 ‘산제’라 불리는데, 부정이 없고 정갈한 두 집을 뽑아 제의를 주관하게 한다.

    함경환 : 여자가 우선 새벽, 두 가족이 지내는 데, 여자가 부정이 있어도 안 되고, 그러니까 멘스 같은 거 허면 안 되고, 그거 지내기 전에 보름, 보통 보름 전에서부터 이런 비린내 나는 거 절대 먹지 말아야 되고, 그런 부정 안 낀 사람이 지내지. 우리가 여기서 저거 허는 건. 보름전에 이제 동네 사람들 알려 가지고, 지낼 수 있는, 내정성이고 동네 사람들을 위해 가지고 허는 거니까, 그걸 인제 부정 있는 사람 제해놓고, 두 집을 정해가지고, 보름 전서부터 좌우간 비린 거 손 안 대고, 그런 사람들이 지내지.

산치성에 올려지는 제물들은 다른 곳에 비해 간단하다. 밥?밤?대추 등만을 올리고 따로 소나 돼지를 잡거나 하지는 않는다.

    함경환 : 음식은 인제 떡하고, 밥, 안제 거기 올라가서 밥허고
    조사자 : 노구메 짓는 거?
    함경환 : 그렇지. 그래 가지고 지내는 거지. 밤, 대추, 고런 거 간단하게.
    조사자 : 뭐 돼지머리나 그런 건 안올리고요?
    함경환 : 응. 안올리고. 할머니니까. 저기서(조사자 주 안말에서) 인제 소 잡고 그러거든. 그래 우리는 그런 걸 안 허고, 인제 밥만 거기서 정성껏 해 가지고, 동네가 인제 예를 들어서 오십 호다 해믄, 다 그 그냥 불을 데린다고, 오십 호. 동네 전체를 위해서 허는 거니까. 그래 가지고 인제 내 정성도 있지만 동네를 위해서 거 인제 두가족이 올라가서, 초저녁 벌써 올라가 가지고 그냥 거기 약수물 터도 있거든.
    조사자 : 약수물이 있어요?
    함경환 : 약수물이 있는데, 지금 거기 우수가 들어가고 그래 가지고 관리들을 잘 못해 가지고. 그래가지고 그 물 떠 가지고 거기서 밥 지어서 그러구 올리거든. 그거 뭐 별다른 건 없어. 큰 산에서, 안말 거기서 하니까, 고 다음날 우리가 이 동네에서….

산치성은 음력 시원 초사흠 밤 열한 시에서 열두 시 사이에 지낸다. 예전에는 열두 시 넘어서 꼭 했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좀 앞당겨 졌다고 한다. 산치성을 지내는 산할머니 바위에는 제의를 지낼 두 집 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 사람들도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부정이 없는 정갈한 사람이어야만 한다.

    함경환 : 다른 사람도 올라가는데, 이제 부정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따라 올라가지. 올라가서 허는데, 근데 두 가족이 인제 제 지내는 거는 두 가족이 허지.

산치성은 산 위에서 밥을 짓고 제물을 차려 놓은 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제의는 마을토박이들을 중심으로 해서 각 집의 세대주 이름을 적은 소지를 올리면서 마을의 평안, 각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것이 중심이 된다.

    함경환 : 인제 그 전에는 집집마다 해가지고, 고 거를 죄 일일이 고 다음날, 제 지내고 나오잖아. 그런걸 다 일일이 다 노놔 드렸다고. 떡도 많이 해 가지고 집집마다 다 노놔드렸어. 근데 지금은 그렇게 허지 않고, 동네 자금이 있으니까, 동네 자금으로 다 해가지고, 그냥 인제 지내고 내려오면은 노인정으로 인제 지내고 내려온다. 그래 인제 거기서들 모여있는 분들, 그 분들이 거기서 인제 잡숫고 그러는 거지. 그래 그날은 산제 지나는 날은, 노인정으로 동네분들이 많이 모이지.

함경환 씨에 의하면 현재 마을 제의를 치르는데 드는 비용은 대략 이삼십 만 원 정도라고 한다. 이 비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현재의 제의는 아주 간단하게 치러지고 있다. 함경환씨는 마을 산치성을 주도적으로 이끄시던 영좌 어른도 다른 곳에 가서 살고 있고, 마을 사람들도 예전만큼 산치성에 열성적이지 않다는 게, 언재마을 산치성의 현재 상황이라고 한다.

    함경환 : 내가 이 일을 본지가 삼 년, 삼 년 됐는데, 그러게 그 전 모양 열성으로 할라고 들지를 않아요. 그러니 일 보는 사람들이 좀 애로가 많지. 협조들을 많이 해야 되는데‥

□ 제보자
언재마을 경로당 할아버지, 할머니들
함경환(사노동 언재마을, 1948년 생, 남)

□ 조사일자 .2000년 10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