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갈매동 담터마을 산치성 l 민속문화 > 마을 신앙의 실태


갈매동 담터마을 산치성 증언채록

갈매동 담터마을 산 2번지 66호 배나무 밭 앞에는 마을에서 ‘굿터’ 또는 ‘도당굿 굿터’라 불리는 곳이 있다. 이 굿터의 넓이는 약 사오백 평 정도가 되는데, 당집과 ‘석수간’, 그리고 창고 건물 등이 있다.

    김성선 : 도당굿 굿터라고 있어요. 거기나(갈매동) 여기나 풍습은 똑같은 데, 거기나 여기나 풍습인데. 에, 그 저희는 뭐냐하면 사변 후에 그 관리 소홀로다가 육이오 때 이렇게 폭격이, 이 마을에 폭격을 하는 바람에, 그 서류 절차가 없어졌어요. 그 사변전까지는 서류가 있었다고 그러는데요. 그 굿 채산 이렇게 하는 거, 연대 표시, 어떻게 내려온 전래 이런 게 있었는데.

담터마을 굿터는 옛날부터 산제를 지내던 땅이었으며, 현재는 마을 공동 재산으로 관리되고 있다. 원래 이 지역은 국유지였는데, 나라에서 땅을 불하하여 팔 적에 마을에서 공동으로 구입한 것이라 한다. 이에 대해 오랫 동안 마을 통장을 맡아온 김성선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김성선 : 옛날에 산제 지내고 그러든 땅이 국유지였었는데, 국유림에서 5.16 나가지고, 박대통령이 동구릉 불하할 적에 저희도 부락 자체에서 산 거예요, 그거, 부락에서부락에서 사 가지고 그것은 어떤 부락 사람들이 쪼개 먹는 식으로 안하고, 옛날부터 굿터니까 이것은 살리자 해서, 그 이렇게 저 마을에 … 근데 인제 옛날에는 산에 이렇게 삐죽하고 그랬었는데, 삐죽하게 그러구 산제사 지낼 때 숲도 우거지고 그랬는데, 인제는 그 마을이 된다고, 거기가 마을이 되니까, 어떠한 그 산제 지낼만한 그러한 그, 그러한 그 위엄 무슨 … 거 산제 지낼 만한 소낭도 있고, 뭐 이렇게 참 귀신 나온다라고 이렇게 뭐냐하면 위압감이 있잖아. 그런 것이 없어, 지금은. 돌담도 있고 옛날엔 그랬잖아, 인제. 저희 부락에도 이렇게 뭐냐하믄, 몇 십년 묵은 나무가 있어 가지고 막 거기다 이렇게 울긋불긋한 천도 매달고, 돌도 있었고 인제 서낭이라고 비슷하게 그러는 게 있었는데, 요즘은 그 지역적인게 개발이 되다 보니까, 뭡니까, 그 위치적으로는 그래요. 갈매리 저 도촌 같은 데는 나무가, 노송이 우거지고 거 괜찮죠. 아무라도 봐도 그런 그런 거(조사자: 거기는 마을이 움푹들어간데 있어 가지고). 그리고 또 별도로 떨어져 있고. 근데 여기는 앞뜰에 집이 다 이렇게 층층이 들어서고 그렇게 됐어요.

굿터 안에 있는 당집은 한국전쟁 이후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전에 있었던 당집이 전쟁으로 인하여 파괴되어서 새롭게 지은 것이다. 당집 앞에는 참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를 서낭으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조사자가 조사를 할 당시, 참나무에는 흰 헝겊이 묶인 나뭇가지가 묶여 있었는데, 아마 대를 내린 나뭇가지 인 듯했다.
시멘트 건물에 청기와 지붕을 한 당집 안에는 마을 공동제의에 사용되는 제삿상, 병풍, 수저, 그릇, 촛대 등 일체의 물건들과 축문이 보관되어 있다. 이것들은 결코 개인 집으로 가져와서는 안되기 때문에 당집에 보관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금기는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이에 대해 마을 영좌 최용출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용출 : 그건(산치성 축문) 우리 개인 집에 안 내려옵니다. 산에다 꼭 두고 써요. 또 산에서 쓰는 그릇도 일반 주민에게 안 내려오고, 그건 항상 언제나 그 산에다 보관하고 쓰고, 당집 안에다가 보관하고 있어요.

당집 오른쪽에는 ‘석수간’이라 불리는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 건물은 약 사 년 전에 지은 것인데, 마을 공동제의에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고, 참여한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어 먹는 곳이라고 한다. 이로 보아 석수간은 잔치 때 음식을 만들기 위해 베푼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숙설간(熟設間)’의 와음으로 보인다.

    김성선 : 우리가 비오면 다 거기서 먹고 잡숫든, 옛날에 석수간이라 그랬거든. 석수간은 뭐냐 하면은 제물을 차려 논 음식을 그런데서 배분해 주는 데라 그랬단 말이야, 그래서 거기서들 식사를 허고 그랬는데. 지금 뭐냐 하면은 짧은 시일 내에 끝이 나니까 석수간이 필요가 없단 말이야. 그리고 우리가 굿을 할려면 뭐가 필요해, 경제적인 게 필요하잖아 그러니까 그걸 좀 뭐냐하면 우리가 그 참 한 달에 월세를 얼마씩 받고 세를 주고 있어. 세를 조금 줘서 임대료가 나오는 것을 가지고, 일 년에 꼬박꼬박 모아 가지고 고거를 우리가 어느 도움 안 받고 우리 부락 자체에서 제 지내는 비용을 충당한다 이 뜻이지.

담터마을에서는 이 굿터를 중심으로 해서 해마다 마을 공동제의가 벌어진다. 굿터와 굿터 앞 배나무 밭 끝자락에 있는 산치성터에서 벌어지는 마을 공동제의를, 마을 사람들은 산치성 또는 산제라고 부른다

    김성선 : 부락과 안녕 뭐 모든 것을 위해서 산치성을 드린다는 것은 정성을 드린다는 뜻이거든. 그래 인제 산치성이라고 인제 주로 많이 불르고, 인제 제를 잡수는 건 인제 산제라고 그러고, 산에서 지내니까. 고렇게 늘 해요. 우리는 어느 해든지 제는 한번도 빼논 예가 없어요. 제는 그냥 꼭 지내요. 굿은 인제 몇 년에, 경제적인 문제때문에 몇 년에 한 번씩 하고.

산치성에서 모셔지는 신은 ‘산할머니’ 또는 ‘할머니신’이라 불리는 신격이다. 김성선 씨의 제보에 의하면, 이 신은 인근 갈매동 도촌마을의 할아버지 신과 어떤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성선 : 그 저희가 알기에는 전래로 볼 것 같으며는, 갈매리 그 도촌마을에는 할아버지신을 모시고, 여기는 할머니신을 모신다고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할머니신을 모신다고 이렇게 되어 있는데 … 그, 그래서 저희가 항상 그 뭐야, 어떤 땐 한 날 잡힐 때도 있고, 굿날이. 거기는(갈매동) 한 해 걸러서 하고, 저희 같은 경우에는 그 전에는 매년 했어요. 근데 지금도 산제사는 매년 지내요. 지내고, 이제 그 경비가 워낙 많이 들기 때문에, 굿 같은 거는 참 몇 년에 한 번씩 띄엄띄엄 해요. 도당굿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해요. 산제사는 매년 허고. 이월 달에 날을 잡아 가지고, 에 삼월 초로 주로 제 지내는 날이 나죠.

산치성에서 모셔지는 산할머니의 영검은 예전에는 대단했다고 한다. 산할머니의 영검의 대표적인 사례를 최용출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용출 : 우리 대에 와서는 워낙 사람들이 인제 좀 시대가 자꾸 약아지니까, 따라서 주민도 약아졌지. 그래서 지금 현재에 산할머니의 영검은 근년에는 없고, 전자에는 영검이 많았죠. 다시 말하자면 산제물을 차릴 때, 절대 간을 못 봅니다, 절대적으로. 근데 인제 혹시 잊어버리고 간을 보다가 입이 이렇게 붓거나, 그런 예는 있죠. 인제 과거에, 간을 봤다가 입이 붓고 그런 예는 있죠. 요즘에는 일절 아주 정신들을 차리기 때문에 간을 보거나 그런 예는 전혀 없죠. 그리고 꼭 목욕재배(계) 철저히, 산에 올라갈 땐 목욕하고 옷 싹 갈아입고 올라가요.

산할머니를 모시는 산치성은 상황에 따라 산치성터에서의 제를 중심으로 지내는 경우와 크게 굿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후자의 경우, 곧 굿을 하는 경우를 굿 또는 도당굿이라고 부른다. 이 모든 경우를 정하는 것은 마을 회의를 통해서 인데, 운영위원회라 불리는 모임에서 주도한다고 한다.

    김성선 : 저희가 제를 지내게 되믄 부락자금이, 거기 그 쓸 수 있는 관리 기금이 있어요. 그 관리 기금이 있는데, 인제 그 관리 기금을 가지고, 인제 운영 위원회라는 게 있어가지고, 운영위원회에서 올해 노인네들이 ‘굿을 하자’ 예를 들어서 뭐냐하믄, ‘2001년에 하자’ 그러면은 운영 위원회에서 그걸 열어 가지고, 그러믄 굿을 하게 되믄 잽이가 다 오거든. 외부에서 인제 불러서 허고, 이 지금 옛날에는 자체에 우리 부락에, 신을 모시는 만신이 있었는데, 만신이 그 양반들이 연로해서 다 돌아가셨다고. 그러구 그 전수자가 없어, 지금. 거니까 그 저희 부락에 인제 그 단골로오는 그러한 만신들한테 의뢰를 해서, 그 만신들한테 의뢰를 허며는 만신이 보통 한 너덧, 다섯, 여섯 명 오거든. 여섯 명 허고 삼저라고 해서 피리 부는 사람 둘 뭐, 해금 뭐 이렇게 허고, 또 그거 뭐, 장구 뭐 북이라든가 기타 등등, 삼잽이가 맞아야 될 거 아녜요? 그럼 그렇게 오며는 한 천여 만원 소요가 되요. 그 사람네들이 소요 금액을 달라는 금액이 아마 천여 만원 달랠 거예요. 그러면 저희 부락에서 인제 그것이 한해 행사니까, 그럼 이 부락사람들이 전부 거기 가서 매달려 되니까, 먹어야 되거든. 먹고 쓰고 그럴려니까 몇 천이 아마 부숴질 걸로 알고 있어요. 자금난이 좀 그렇죠.

산치성의 과정은 음력 이월 초하루 날 단골 만신이 부정을 풀고, 대를 내려서 산일 볼 사람을 뽑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주, 삼화주, 도가 등이 이때 뽑힌다. 이월 십오일 경이 되면, 산치성 때 쓰일 홰를 만들 깨끗한 나무를 준비한다. 이월 그믐이 되면 다시 만신이 와서 부정을 치고, 삼월 초하루날 새벽에 날을 받는 사람이 날을 받는다. 산치성하는 날을 받으면, 당집에다가 산치성 제의 날짜를 적어 붙인다 그리고 산치성 당일에 제의를 치르고, 그 이튿날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제의에 대한 총 결산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논의를 한다. 이러한 산치성의 과정을 주도하는 이는 마을에서 뽑힌 ‘영좌’이다. 현재 십 년째 마을 영좌를 맡고 있는 분은 최용출 씨인데, 그가 직접 말하는 산치성의 과정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최용출 : 음력으로 이월 초하루 날, 예 단골 만신이 있어요. 그 분들이 오셔서, 부정을 풀고, 이제 우리 절차를 말씀드릴께. 산일 보시는 분들이 모여서, 그 생년월일 그것을 다 인제 봐 가지고 대가 내려서 산일 보는 사람들을 뽑습니다. 대가 가는 집마다. 인제 무슨 얘긴지 아세요? 이월 초하루 날 대가 가서 산일 볼 사람을 대가 가는 집마다 뽑아서, 적어 봤다가, 인제 이월 초하루 날, 인제 여기서 말하기를, 예 이월 초하루 날은 산일 볼 사람 뽑는 날, 이월 한 십오일 경에 제재소에 가서 깨끗한 나무를 실어다가, 제재소, 뭐 건물을 지었다 헐었던 나무라든가 이런걸 일절 안 써요. 제재소에 가서 깨끗한 나무 사다가 해를 매 놓고, 이월 그믐날 또 만신이 와서 부정을 치고, 삼월 초하룻날 새벽에 그 날 받이 하는 분이 있어요, 그 분한테 두 사람이 가서 날을 받아서, 당집에 갖다 붙여 놓고, 몇 일 날 제사를 모십니다 하고.
    조사자 : 당집에다가요?
    최용출 : 그렇죠. 문 창호지 이런 데다가 써서 갖다 붙여 놓고, 제삿날이 삼월 초하루든, 초이틀이든, 초사흘이든 날 일진에 따라서 날이 나는 대로, 갖다 써서 붙여 놓고, 그날짜에 재물을 가서 모셔다가, 치성을 모시는 겁니다. 만약에 굿을 허게 되며는, 만일 오늘 치성을 모셨다면 내일 대동이 다 모여서 명절날과 마찬가지로 다 정결한 마음가짐으로 이제 굿을 허고 그거예요. 갈매리나 똑같애요.
    조사자 : 당제를 다 지낸 후에는 어떻게 하죠?
    최용출 : 제사를 모시고 그 이튿날은 역시 대동분들이 다 모여서, 제사에 모신 모든 비용이라든지, 산에 대해서 앞으로 운영해 나갈 것을 같이 의논하고 그러면 끝나는 거죠. 그 이튿날 하기 닦는 날이다 해서.
    조사자 : 하기 닦는다?
    최용출 : 하기 닦는다.
    김성선 : 그러니까 그것이 뭐냐 하면은, 산제를 지냈잖아요. 지내고 끝나고 나면 날이 밝았잖아. 그 이튿날에 제사를 지내믄, 그날이, 저 굿을 허는 날이면 그 날이 준 날이거든, 굿 날인데, 굿을 안 지내고 제만 지내며는, 하기 닦는 날이라고, 저 하기 닦는 날은 뭔 뜻인가 하면은 결산하는 날이야, 그 날에 음식을 총 채려 놓은 걸 다 동네분들이 나눠 잡숫고, 여기에 산제에 비용이 얼마가 들어갔다. 어떻게 어떻게해줘야겠다.
    최용출 : 앞으론 또 우리 산할머니를 위해서 모든 일을 어떻게 해 나가는 게 좋겠느냐. 의논도 하고….
    김성선 : 굿을 허게 되믄, 그 날에 하기를 안 닦고, 굿 허고 고 이튿날.
    최용출 : 고 다음날.
    김성선 : 그러니까 굿을 허게 되믄 삽일이 걸리고, 이제 굿을 안하면은 저택에 지내서 그 이튿날까지 하고, 그렇게 되는 거지.

산치성에서 쓰이는 제물로는 ‘모든 채소는 날로, 익히지 않고 날로’ 올린다는 것과 소고기를 쓴다는 점을 제보자들은 강조했다.

    최용출 : 돼지고기는 일절 안 쓰고, 소고기만 씁니다.
    김성선 : 그것은 그 할머니라 그래가지고, 원래 제를 지낼 적에, 보통 제를 지낼 적에 돼지머리를 많이 쓰잖아. 근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소머리를 써요.
    최용출 : 예전서부터 내려오는 전례고, 또 우리 여기 주민들도 고사 지낼 때, 반드시 소고기, 돼지고기 안 써요, 가정집에서도.
    김성선 : 고사 그, 산제했을 적에 소머리를 썼기 때문에 저희도 돼지머리를 안 써요, 이 부락 사람 만큼은. 전에 본 주민들은 자기네들이 인제 뭐냐하면 고사 같은 걸 지내도, 없으면 술 한잔 놓고 북어를 놀 망정, 돼지머리는 안 놓습니다.

□ 제보자
김성선(갈매동 담터마을, 1937년 생, 남)
최용출(갈매동 담터마을, 1923년 생, 남)

□ 조사일자 : 2000년 10월 8일, 10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