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갈매동 도촌마을 산치성 - 갈매동 도당굿 l 민속문화 > 마을 신앙의 실태


1차 증언채록

갈매동 도촌마을의 공동제의는 구리시 뿐만 아니라 서울에까지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갈매동도당굿’이라 알려져 있으나, 마을에 전하는 문서에는 ‘산치성’이라 적혀 있고 마을사람들 역시 그렇게 부르고 있다. 이 마을의 공동제의는 1995년 8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1996년에 세밀한 현지 조사가 이루어져서 『갈매동 도당굿』이라는 학술종합보고서가 나와 있어 좋은 참고가 된다. 2000년 4월 6일에서 7일에 걸쳐 벌어진 산치성과 본굿에 대한 조사자의 참여 관찰과 현지 조사, 그리고 앞서 이루어진 보고서를 참고하여 도촌마을의 공동제의를 정리해 본다.

도촌마을 산치성은 마을에서 도당산 이라 부르는 곳에 위치한 당집, 도당터, 치성터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당집은 산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있다. 기와 지붕을 한 1칸의 당집은 “龍 昭和拾年乙亥十月二十五日 立柱 上樑 龜”라 쓰여진 상량문으로 보아 1935년에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원래의 당집은 초가집이었는데, 나중에 보수를 한 것이라 한다. 당집 위쪽에는 도당굿을 벌이는 도당터와 숙수간이라 불리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숙수간은 1994년에 새로 지은 것인데, 제물을 준비하는 곳이다. 마을 공동제의에 쓰일 물건을 넣어두고 떡을 찌는 등의 일을 할 장소가 없어 불편을 겪다가 아예 건물을 마련한 것이라 한다. 이로 보아 숙수간은 잔치 때 음식을 만들기 위해 베푼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숙설간(熟設間)’의 와음으로 보인다.

갈매동 도촌마을의 산치성은 이년에 한 번씩 봄에 치러지는데, 음력 이월 초하루 제의를 주관할 제주들을 뽑는 회의에서부터 그 준비가 이루어진다. 음력 이월 초하루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제의를 주관할 사람들을 선출한다. 뜻이 있는 마을 어른들과 영좌, 통장 등이 이때 모인다.
먼저 도가를 뽑는데, 그 선출 방식은 무당이 대를 내려 지명한다.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여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에게 빌고 나서 나무에 대를 받는다. 대잡이로 임명된 사람은 대가 이끄는 데로 따라가 마을 사람들 중에서 도가를 지명한다. 산도가라고도 불리는 도가는 마을에서 비교적 여유가 있으며, 집안에 손재수가 없는 깨끗한 사람이 대체로 뽑힌다. 이렇게 뽑힌 도가는 엄격하게 금기를 지켜야 한다. 초상집이나 험한 일을 피하고 외출마저 삼간다. 도가는 제의 준비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땔나무도 하고 제물 준비를 비롯해 산치성을 올리는 데 필요한 제반사를 주관한다. 이렇게 도가의 책무와 역할이 크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도가에게 일정 정도의 대가를 지불한다.
도가와 함께 마을 공동제의를 준비하게 될 화주와 시주, 도당굿에서 대를 잡을 대잡이, 제물 차리는 사람인 숙수, 당지기 역할을 하는 당주도 이때 함께 뽑는다. 이들은 도가와는 달리 일상적인 일을 그대로 할 수 있지만, 초상집을 피하는 등의 금기는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이렇게 제의를 주관할 사람들이 뽑히면, 도가는 제의 비용 마련에 나선다. 제의 비용은 집집마다 갹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예전에는 개인별로 쌀을 반 말에서 한 말 정도 냈는데, 현재는 쌀과 돈을 함께 낸다. 제의 비용은 대체로 제의 날짜가 정해지는 날에 반 이상이 모아진다고 한다.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은 물른이고 외지에 나가 사는 사람들도 기꺼이 제의 비용을 함께 부담한다. 또 마을 전체를 도는 유가를 할 때에 대잡이의 대에 한지로 싼 돈을 매달게 되는데, 이것 역시 적지 않게 걷힌다.

제의에 쓰일 제물 준비는 마을에 전해져 오는 문서에 따라 이루어진다. 1928년과 1960년도에 기록된 이 문서에는 아주 상세하게 제의에 쓰이는 모든 물품 목록이 기록되어 있다. 제물 구입은 보통 청량리시장을 이용한다. 제물 구입을 할 때에도 엄격한 금기가 있는데, ‘초상을 치른 집에서는 물건을 사지 않는다’라거나, ‘물건은 가장 좋은 걸로 사고 물건값은 절대 깎지 않는다’ 등이 그것이다. 구입한 제물들은 숙수간에 보관한다. 제의 날짜까지 사람들 손을 타면 안되므로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제물 구입과 관련해서 마을에서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도가가 도당굿에 쓸 소를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주막에 들러 막걸리 한 잔하다 보니, 매어 놓은 소가 없어졌다. 그래서하는 수 없다 싶어 다시 돈을 가져다 사려고 터덜터덜 마을로 돌아와 보니 그 소가 소를 잡는 장소에 와 있었다고 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소마저도 자신이 제의에 쓰일 것임을 알고 스스로 오게 할 정도로 마을 신의 영험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음력 이월 십일과 이십일 그리고 말일을 전후하여 당집과 그 주변 청소가 이루어진다. 보통 마을 남자들이 중심이 되어, 당집 주변 벌초, 당집소제, 제기정리, 횃대만들기, 치성터다지기, 굿청만들기 등을 한다. 굿청은 당집과 치성터 중간에 지어지는데, 옛날에는 볏집으로 ‘채’를 만들어 날짐승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요즈음은 비닐 하우스로 대신한다. 굿청 안은 검암산 쪽으로 신단을 두고 좌우로 멍석을 깔아 산치성 본굿(도당굿)의 장소로 사용된다. 산치성 날짜는 음력 삼월 초하루 새벽에 정해진다. 이른 새벽에 제주로 뽑힌 사람들과 날을 보는 사람이 모여서 날짜를 잡는다. 제주들 각각의 생기복덕은 물른이고 그들 부인의 것까지 종합하여 가장 깨끗한 날이 산치성 날로 정해진다. 산치성 날짜는 보통 음력 삼월 초순에 정해진다. 지난해의 경우(서기 2000년) 4월 6일(음력 3월 2일)로 정해졌다. 산치성 날짜가 정해지면 제주들은 당집 문을 열어 놓고, 문 중앙 위쪽에 정해진 산치성 날짜를 적은 종이를 붙여 놓는다

2000년에 올린 산치성은 음력 삼월 초이튿날 벌어졌다. 당주 부인이 행하는 ‘안반고사’, 손으로 직접 빚은 두부를 만들어 상에 올리는 ‘조포모시기’, 그리고 산치성에 올릴 밤을 짓는 ‘노구메짓기’에 이어 본격적인 산치성이 밤 9시 25분 경부터 시작되었다. 횃대를 든 청년들이 불을 밝히는 가운데 고깔 모양으로 한지를 씌운 제물들을 입에 한지를 문 아낙들이 치성터로 옮긴다. 산치성을 올리는 장소는 예전에 호랑이가 자주 내려왔다는 곳이다. 산치성제는 산치성터에 병풍을 두르고 그 앞에 상을 놓고 벌어진다 제주가 절을 세 번 하고서 젓가락으로 상을 세 번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된 제의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제주가 축문을 읽고 소지를 올리면 산치성은 끝이 난다. 이때까지 제주들은 물른이고 참석한 사람들 모두는 일체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산치성터에서의 산치성은 9시 55분 경에 끝이 났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10시 30분이 되자 도당터에서 청년들 7~8명이 마을을 향해 “서낭맞이 갑시다”라고 외친다. 이제 서낭신을 맞아들이는 ‘서낭맞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새오개서낭’이라 불리는 서낭은 퇴계원에서 신내동으로 빠지는 차량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갯마루 오른쪽 산 위에 자리하고 있다. 도당 터에서 마을을 가로질러 새오개서낭을 맞이하러 가는 도중, 삼거리나 사거리 등 길이 합쳐지는 지점에서는 무당이 어김없이 거리제를 올린다. 11시 40분 경 새오개서낭이 있는 곳에 도착하고, 무당과 제관이 새오개서낭 앞으로 올라가서 제를 올린다. 새오개서낭을 맞이한 이후에 일종의 길놀이라 할수 있는 ‘유가(遊街)’가 시작된다. 횃대를 든 청년들이 불을 밝히는 가운데, 만신과 대잡이 그리고 퐁물을 치는 산이들을 앞세우고 마을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른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집 앞에다가 불을 피워 유가를 맞아들인다는 신호를 한다. 그리고 팥 시루와 북어 등을 차린 상을 올려서 대를 맞이하며 복을 빈다. 대가 집 안팎을 돌며 축원을 해주면 대주가 나와서 절을 하고 유가 행렬을 이룬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예전에는 유가가 몇 일 동안 지속되었다고도 한다. 요즈음은 하롯밤을 새우고 다음날 오전까지 지속된다.
유가가 끝나면 ‘본굿’이 시작된다. 이때에는 갈매동 도촌마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온다. 본굿은 대삽이를 필두로 한 일행이 당으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는 ‘장문밟기’로 시작된다 이어서 당에 도착하면 굿을 하게 된 내력을 고하고 답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인 본굿이 시작된다. 본굿은 초부정→가망청배→조상거리→산할아버지→별상거리→제석거리→창부거리→대감놀이→바라→계면떡거리→군웅거리→걸립→당집고사→뒷전 등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본굿이 모두 끝나고 그 이튿날에는 도갓집에 마을 대표들이 모여 마을 공동제의에쓰인 비용을 정산한다. 마을 공동제의에 관한 모든 것이 의논되고 기록되어 마을 장부에 남겨진다.

□ 조사일자 : 2000년 4월 6일~4월 7일, 2000년 10월 8일, 2000년 10월 16일, 2001년 5월 12일
□ 참고문헌 : 갈매동 도당굿 학술종합조사단, 『갈매동 도당굿』, 구리시,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