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교문동 한다리마을 대동고사 l 민속문화 > 마을 신앙의 실태


1986년 시 승격과 함께 교문리와 아천리를 합하여 교문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1995년 3월13일자로 교문1 2동으로 분리되었고, 면적은 6.7㎢로 시 전체의 22%에 해당한다. 교문1동의 총 가구수는 6,838가구로 전체 인구는 18,111명이며 행정구역은 29통 162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련 기관으로는 구리시청, 세무서, 소방서, 시립도서관 등 9개소의 관공서와 학교 3개소, 금융기관 6개소, 우체국 1개소, 병?의원 9개소, 약국 8개소, 중소기업체 72개소, 노인정 12개소, 유아원 1개소, 교회 19개소, 사찰 11개소가 있다. 개발제한구역이 3.6㎢에 달하며,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2.7㎢가 지정되어 있고, 동사무소는 교문동 262-4번지에 있다. 교문1동의 역대 동장은 유동근, 마석인, 유소선이고 분동 이후 교문1동의 동장은 유소선이 맡고 있다. 교문2동은 1995년 3월 13일부터 업무를 시작했으며, 전체 7,747가구에 인구는 23,399명이다. 총면적은 1.1㎢로 시 전체의 4%에 해당하며, 이 중 개발제한구역이 0.6㎢이다. 행정구역은 21통 169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공무원 수는 17명이다 관련 기관으로는 관공서 1개소, 학교 2개소, 금융기관 4개소 등이 있으며, 기타 다수의 병원 의원과 기업체가 소재하고 있다. 동사무소는 교문동 799-1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역대 동장은 신재석에 이어 1995년3월 13일 이래로 전용락이 맡고 있다.

한다리라는 지명은 아치울 북쪽에 있는 마을. 아차산으로부터 내려오는 두 줄기의 산자락쪽 기슭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고 동쪽 기슭에도 몇 채의 집이 있다. 조선시대에 발행된 지도에는 ‘한교’, 규장각에 있는 고문서에는 ‘일교’, 1912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 일람』에는 ‘백교’라 표기되어 있다. 1956년에 발간된 『경녕군파 선원 이씨세보』에 있는 지도에는 ‘백교’라 표기되어 있다.
이러한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크다’는 뜻의 우리말 ‘한’을 한자말인 한, 대, 일자 등으로 대신 쓴 것으로 생각된다. 즉 이곳의 원 지명은 한다리인데, 일제시대에 발음이 ‘흰다리’로 바뀌고, 그 말이 다시 한자인 ‘백교’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사람들에 의하면 ‘한다리가 옳은 지명이라고 한다.

1) 제명

한다리 대동고사

2) 당명 및 형태

진대(진태 혹은 진주)할머니와 진대(진태 혹은 진주)할아버지를 모시고 있다. 한다리마을 입구의 향나무가 바로 신체이다. 할머니 향나무만 남아있었으나, 지금은 새로 심은 향나무로 할아버지, 할머니 향나무라 부르고 있다.

3) 신격 및 신체

본래는 진대할아버지 향나무가 바깥에, 안쪽으로 진대할머니 향나무가 있었으나, 한국전쟁과 도로 공사 등으로 전부 사라지고, 현재의 신체인 향나무는 다시 사다 심은 것이다.

4) 제일

음력 10월 초하루 밤 11시경

5) 제주

예전에는 마을에서 깨끗한 사람을 선출하였으나, 현재는 통장이 당연직으로 맡고 있다. 일단 제주로 선출되면 아주 엄격하게 부정을 조심하며 금기를 지키고 있다. 제일을 며칠 앞두고 동네 방송으로 비린 것을 먹지 말라는 등의 금기사항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제사 당일에는 소나 개를 잡는 일 등 피[血]를 보는 일은 절대 삼가며 부정 타는 일이 없도록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조심한다.

6) 제비

미리 거두는 것이 아니고, 제사를 지낸 다음 날 거두는 방식을 취한다.

7) 제물

제물은 비교적 간단하여 삼색실과, 떡, 북어 정도만 준비한다.

8) 제차

당일 제물을 준비하여 밤에 마을에서 깨끗한 사람이 당으로 가져간다. 제물을 진설하고 집안제사를 행하는 방식대로 절하기와 술잔 올리기를 하고 소지를 한다. 소지는 <도중소리>라 부르며 3장을 올리는데 참석자들은 1장씩 올린다. 음복은 마을로 돌아와서 한다. 현재의 대동고사라는 명칭은 굿이 분화된 이후의 명칭으로 여겨지며, 마을 굿이 분화되면서 대동고사라는 축소된 형식으로 잔존한 것으로 추측된다. 예전에는 소[牛]를 잡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큰 굿이 벌어겼다는 것을 제보자의 증언으로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