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교문동 한다리마을 대동고사 l 민속문화 > 마을 신앙의 실태


2차 증언채록

한다리마을에는 그 입구에 향나무 2그루, 좀 떨어진 곳에 한 그루의 향나무가 있다. 이것은 한다리마을에서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 고사를 지냈는데 그 제사를 지내는 대상이 그 향나무이다. 향나무는 2그루를 진태할머니나무, 나머지 1그루를 진태할아버지나무라고 한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한다리마을을 찾았을 때 통장님댁으로 안내를 받았다. 하지만 통장님은 출타중이셨고, 그 사모님과 동네분 몇이 계셨다.
거기서 만날 김명숙 할머니와 조진원 할아버지를 통하여 대동고사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조진원 : 음력 10월 초하루 동지 전에 지내는데 고사를 주관하시던 할머니가 계셨는데 작년에 돌아가셨어. 이름은 잘 모르고 그냥 정씨 할머니라 그랬어.
    조사자 : 향나무가 제사 지내기엔 너무 작지 많아요?
    김명숙 : 원래는 컸는데 도로 공사한다고 베어 버렸지. 그래서 새로 심은 거야 나무 이름은 진태할아버지, 할머니나무라 그래. (조사자 주 : 진대할아버지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현지주민의 말로는 진태할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조진원 : 한 20년에 좀 넘었을거여. 제사도 저 향나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제사를 지내는데 각 집마다 창호지를 준비해서 소지를 올려. 제사를 주관하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론 통장이 제사를 지내.
    조사자 : 대동고사 지낼 때 특별히 올리는 음식이 있으세요?
    조진원 : 그냥 삼색 과일이랑 술이랑 포 정도를 올리지 특별히 다른 건 없어. 제사는 밤 12시 이전에 제사를 시작하며 1시간 정도 계속하지,
    조사자 : 제사는 왜 지내세요?
    조진원 : 그냥 마을 잘 되라고 비는 거여. 뭐 다른 제사들 똑같지 뭐. 별거 없어.
    조사자 : 할아버지, 마을 이름을 왜 한다리라고 불러요?
    조진원 : 마을 유래는 마을 입구에 유래비가 있으니까 그거 보면 될거여.
    조사자 : 마을에 내려오는 무슨 전설이라도 있으세요?
    조진원 : 별거 없어.
    조사자 : 마을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시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김명숙 :원래 마을 입구에 다리가 있었는데 흰색 다리에서 흰 다리 마을이라 불렸어 그 흰다리란 말이 힌다리, 한다리가 된 거여. 지금은 그 다리위로 복개 공사를 해서 다리는 복개 도로 밑에 있거든. 원래는 좁았는데 내시들이 죽으면 이 마을 뒷산에 묻혔어. 그 장례 행렬이 들어올려고 다리를 확장했어. 그 후로 왜놈들이 확장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복개공사를 한거여. (조사자 주 : 실제로 뒷산 이름이 내시산이었고 내시촌이라 불렸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무덤은 없어지고, 산 이름만 남았다.)
    조사자 : 혹시 마을에 빈대절터라고 있지 않아요?
    조진원 : 아‥‥있지. 저 산(시루봉을 가리키며)에 가면 있는데. 왜 빈대절이냐면(조사자주 : 빈대절터의 위치에 대해서 마을 주민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였다.) 절에 하도빈대가 많아서 그 절 스님들이 빈대 때문에 열 받은 거야. 그래서 절에다 불지르고 떠나버렸어. 빈대절이란 명칭도 그 때문에 붙었어. 그리고 거기에 가면 어마어마한 돌탑이 있는데 3층탑 높이만 할거여. 꼭 봐.

돌탑이 있다는 말을 듣고 돌탑을 찾으러 가서, 거기에 마을 사람들이 보살님이라고 부르는 혼자 사는 할머니를 만나 탑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조사자 : 할머니 이 탑은 누가 만들었나요?
    보 살 : (조사자 주 . 보살이라고 표기한 것은 상함을 안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몰라
    조사자 : 아시는 대로만 말씀해 주세요.
    보 살 ; 이 돌탑은 우리 영감이 40년 동안 매일 쌓은 거여. 영감이 산을 좋아해서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여기 시루봉 아래 탑자리가 남북한의 딱 중간 지점인 거여. 그래서 그 자리에 탑을 쌓기 시작했는데 40년 동안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지. 이젠 내가쌓고 있어.
    조사자 : 왜 관룡탑이라 이름 붙였나요?
    보 살 : 영감이 저 앞 시루봉을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넘어가더란 거여. 그래서 관룡탑이라 지었어.

그 탑을 쌓으신 할아버지 성함은 김봉학 할아버지이고 이미 작고하셨다. 그리고 빈대절터는 밭으로 변했고, 보살 할머니의 말씀으로는 빈대절이 아니라 화관암이라 했다. 돌탑은 자체로 법당의 역할을 하고 있었고 작은 암자와 같은 곳이었다.

□ 제보자
김선주(교문동 한다리마을, 1941년 생, 여)
강득성(교문동 한다리마을, 1945년 생, 남)
정성훈(교문동 한다리마을, 1909년 생, 남)
김명숙(교문동 한다리마을, 1931년 생, 여)
조진원(교문동 한다리마을, 1938년 생, 남)
보살 할머니

□ 조사일자 .2000년 9월 23일, 2001년 3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