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토평동 벌말 도당나무 치성, 서낭나무 치성 l 민속문화 > 마을 신앙의 실태


2차 증언채록


    조사자 : 저희가 도당나무와 치성나무에 대해 조사하려고 하는데요.
    이성실 : 저 움마이라는데 거기 있었는데 그게 인제 축년 장마에 떠내려갔어, 나무가 파여서 떠내려가고 있다가 거기도 또 떠내려가고 없어져 가지고 이쪽으로 옮겼다가 나무도 또 죽고 그래서 이게 옮긴 거야.
    조사자 : 이게 원래 아니었는데 도당나무가 된 겁니까?
    이성실 : 그렇지, 도당나무가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그 언제부터 그게 했는지 모르지.
    조사자 : 그럼 마을이 언제쯤 어떤 분이 처음 이 마을을….
    이성실 : 그게 모르지 뭐. 그게 … 우리 할아버지가 … 이 할아버지가 19대 할아버진데1479년도 생이야. 요 미음 동산에 모였다가 화장답혀가지고 있다가.
    조사자 : 성함이 그럼?
    이성실 : 중원, 이자 중자 원자. 이건 족보이름이고 자가 이중원. 요건 이예 이자, 오얏리자. 이 할아버지적부터 여기서 산 거야. 벌말서. 1479년 생이시거든. 여기서 나셨는지, 이게 저 송산서 아마 나셔가지고 이리로 오셨을꺼야. 이 할아버지가 저 의정부 있거던? 이 할아버지 아드님이 이정건인데, 이 양반이 인제, 이 양반은 의정부시에 살고. 선조가, 거기서 사시다가 이쪽으로 오셔갖고 사시다가 돌아가셔서 이쪽에 묻히셨나봐.
    조사자 : 이 마을에는 대부분이 그럼 벽진 이씨분들께서 주로 사시는….
    이성실 : 여기는 벽진 이씨하고 … 경주 김씨, 두 성이 많았지. 우리 벽진 이씨는, 벽진 이씨도 그렇게 경주 김씨도 그렇고 많이 저 신해천, 저 건배로 많이 가셨지. 우린 건배로 갔다가 다시 갔다가 우리가 이리 분가했지. 우리 아버지가 오형제 분인데 우리만 이리 나온거야. 예전에 여기 동네가 싹 떠내갔어, (을)축년에. (을)축년이, 1925년. 1925년에 큰 … 그리가지고 싹 지나갔어. 그래서 벌말로 이사간거야. 세집은 안 떴지. 여 집하고 그 집은 안 떠나갔지. 뭐 안 떠나가, 싹 떠나갔지. 그건 육이오 때 안 탄거지 싹 떠나갔지. 돈대가, 여기 돈대가 마차 갖다 놓고 거기서 울아버지가 그때 … 어휴, 언제 한번 살아보나 이러셨대요. 다 죽었다 그랬는데, 뭐.
    조사자 : 어르신 주민등록번호랑 연락처 있으시면….
    이성실 : 37년 12월 23일….
    조사자 : 저희가 자료집 만들면 어르신 성함하고 올라가거든요.
    이성실 : 구리시 토평동 563-1번지.
    조사자 : 전화번호는요?
    이성실 : 오륙삼에 이칠삼륙. 공삼일.
    조사자 : 여기 이 주변에 민간신앙하고 관련된 나무라든가 놀이라든가 있으면.
    이성실 : 나무가 요기 있지, 아까 저 내가 얘기했잖아. 저구 있다가 떠내려가서 또 이쪽으로 옮겼다가 또 떠내려가서 그 나무가 죽었어요. 그래가지고 이쪽으로 또 옮긴 거지.
    조사자 : 그럼 나무 말고 이 지방에서 구체적으로 민속은.
    이성실 : 없지. 옛날엔 대동굿을 도당굿이라 해서 크게 했어요, 대동굿. 도당굿이라고 그래.
    조사자 : 그 굿을 어떻게 했는지 조금만 설명해 주실 수….
    이성실 : 그러니까 인제 음력으로 구월 이십오일날, 이제 동네 어른들이 모여가지고 날을받아. 구월 이십오일날, 굿날을 받는다고. 그게 어찌 하냐 하면, 시월초승에, 시월일일서부터 이제 날짜를 아마 십일까지 쓰는지 며칠 쓰나봐 써서 된박에다 넣요. 콩에다 날짜 써서. 그게 흔들면 튀어나와. 그게 이거 날짜거든. 그래서 날을 받아. 그리고 이십오일날, 당주, 하주, 당주는 음식 차리는 집이고, 하주는 밥허고 뭐 이런거 하는 집이 하주야. 당주, 하주. 그건 또 인제 누구네가 부정하지 않고 이런거저런거 해 가지고 콩에다 써 넣어. 그래가지고 흔들어 가지고 나오면 받는다고. 인제 굿을 어떻게 하냐 하면, 만약에 초하룻날 굿이라면은 시월 초하룻날 굿이라면은, 인제 이십오일날 날을 받게 되면 절대 인제 이 새 같은 거 쥐 같은 거 이런거 통 못 잡아요. 못 잡고, 또 부부간에도 같이 자지도 않고, 이렇게 인제 저거한다고. 일일날이면은, 일일날 굿이면은 인제 그믐날, 그믐날 저녁에 부정친다고 그래, 부정. 부정치고 나서 일일날서부터 낮에서부터 밤새도록 하지. 그렇고 하고.
    조사자 : 그럼 하룻 동안만 딱 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이성실 : 그러니까 일일날 저녁에 전날 부정쳤다가 일일날서부터 엔징 굿하고 밤새도록 하고 그 다음날 그만이지.
    조사자 : 그럼 굿하실 때 무당, 그 무당집은 이제 이쪽에 없고요?
    이성실 :지금은 없고 이제 다시 옛날에는 저기 있었어요. 수누피라고. 신대촌, 원수댁. 거기서 했어. 그 양반 지금 살아 있지.
    조사자 : 어디로 가면 저희가 찾아뵐 수 있는지….
    이성실 : 그 무당? 수택일동. 수택이동인지 여튼 원수택이야 원수택 수택리. 수택린데 수택리가 삼부당이거든 그 … 수택이동이 될런지 수택일동이 될런지를 모르겠단 말이야. 그게 그러니까 원수택이라 그래. 거기가면 있어요. 그게 그 옛날에 그 양반을 부를 때 상복이처라고 불렀거든, 이 양반은 상복이란 양반은 돌아가셨고, 남자고 이 양반이 큰무당이에요. 연세도 많지. (조사자주: 수누피마을 무당에 관한 내용인 듯 함). 굿에 대해서 잘아는 분은 또 여기 동네에 무당이 있어.
    조사자 : 저희가 찾아뵐 수 있을까요?
    이성실 : 그럼, 집은 내 가르쳐줄께. 이 굿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쌀이고 뭐 죄 거둬와. 거둬가지고 도당나무 있고 거기다가 멍석 한구석에 춰 걷어다가 치고 해가지고…. 대동 아주 유명해. 아주 유명해서 우리 쪼꾸매서부터 무척 기다렸구. 기다렸다가 장사꾼 오면 사다가 친척들 나눠 주고 기다리고 무척 좋아했거든, 그럼 저 고기 대해서 아는 분 … 지금 있는지 모르겠어. 굿하는 거 그런거 그 양반한테 물어보면 죄 잘 안다구. 지금은 저 그게 없어지고 초하루, 칠월 초하루 또 시월 초하루, 다 음력으로 여기 손모리 갖다 놓고 … 여기 시월 일일, 칠월 일일날. 음력이니까인 제 칠월 초하루면은 유월 삼십일날 새벽에 지내요. 옛날에 여기 장서도 하튼이 동네 한 동네 가지고, 광나루 뚝섬 다 덤벼도 못당했다 이거야.
    조사자 : 여기가 원래 광나루보다도 큰….
    이성실 : 아니 크진 않지만 사람이 쎄지 사람이 쎄고 그래서 뚝섬 이쪽도 못 당하고 그랬단 말이야.

노인정을 나와 1분 쯤 거리에 무당이라는 이매화 씨의 집이 있었고 그곳에서 증언을 채록하였다.

    이매화 : 옛날에는 대동일동이 아주 한 삼백호가 살았거던? 이렇게 어렵게 사는 사람들 남 셋방을 안줬어요. 전부 아주 본바닥 사람들만 살았지. 그리니까 한 삼백호 살았는데, 시월 상달이면은 초하룻날, 날을 구월 스물닷새날 날을 받아가지고 초하루부터는 사람을 안들여. 타관에 나갔던 사람은 들어와서 못잤고 들어온 사람은 나가지 못하고. 또 그 안에는 치성날을 받아두면 초 열흘날에 나요, 날짜가. 그러면은 그 안에는 팥도 못 삶아먹고 콩도 못 볶아 먹고 떡도 못해 먹고, 먹고 싶어도. 허기 전에는, 대동굿 허기 전에는. 그렇게 엄하게 그냥 해가지고 만약 그렇게 해먹었다면 큰일이 나갖구, 난리가 나. 동네가 뒤집히고 막. 번동 사람만 사니까 철저하게 지켰지. 그게 인제 그냥 스무 닷새날 날 받으면 초열흘, 시월 초 열흘 안에나, 날짜가 사흘날이나 닷새날이나 이래면 청량리시장 중앙시장, 옛날에는 지금 이렇게 저으니까 그렇지 중앙시장이 아주 쳤어. 왕십리, 중앙시장, 청량리시장 밖에 치는 데가 없어. 동대문시장은 치지도 않고. 그럼 거기서, 여기서 야채 하는 거를 이 대동에서 농사짓는 걸 다 청량리시장으로 가고, 챙이, 저 … 감자?옥수수?수수 이렇게, 좁쌀 이렇게 해니까. 그래갖고 그리 가니까는 시장에, 중앙시장에 다 당직을 해놓고, 시장 상인이, 말하자면 사장이 동네 몇 집씩 이렇게 잡아놓고 했거든. 그렇게 잡아놓고 했는데, 그게 점점 시국이 되니까는 점점 타관 사람이 들어 오고 한 사람 두 사람 들어오니까 동네 사람은 또 그냥 안 좋아갔고 나가서 살게 되잖아, 자식들이. 차가니까. 자식들이 자래니까, 교회를 갖고 그러니까 집에서 야단을 치고 나가살고 그러니까 그게 망가진거야. 그래서 굿을 안해. 그뒤로부터. 한 15년 됐어. 15년 됐는데, 그 전에는 굿을 하믄 거기 상인들이, 다 사흘 나흘을 해요, 여기서, 굿을. 사흘 나흘을 낭구 밑에다가 도당나무 밑에다가 그냥, 천막을 치고 인제 이렇게 해서 사흘 나흘을 한대면 피리 깡깽이 불고 그냥 만신놀이 한 연화군이 와서 동네에서 있는 집들은 인절미고 해서 거기다 바치는 거야. 다 그 사람들 다 멕여 그러니까 사흘 굿할 동안에 동네에서 번갈아가며 인절미 뭐 … 지금이니까 그렇지 그때는 인절미가 최고 떡이야. 좁쌀로 조만 심을 때니까, 여기는 좁곶이거든. 지금 쌀곶이 아니야. 지금이니까 쌀밥먹지. 옛날에는수수 좁쌀?보리?밀 이런 거밖에 못하니까. 게까 그냥 그 좁쌀로, 차좁쌀이래면 몰라, 총각들은. 파르소롬한 찰좁쌀이 있어. 그 떡을 해서 이만한 한 집에 하나씩 해 나가는거야,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그래고 그 굿으로 하면은 날 받아서 밥해주는 당주집은 상제도 못 들어와. 아무도 못 드나들어. 그 집 식구 아주 정결하게 비린 것도 안 먹고. 그렇게 철저하게 해가지고 사흘을 굿을 하믄 인제 마지막가는 날, 이틀 저녁에는 밤새도록 거기서 굿을 하고, 사흘날은 동네 호가를 돌아요. 그 무당이 옷을 입고 신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압장을 쓰고 배를 내려갖고, 저아랫녁에 지금 하더라, 그런거, 배 내려갖고 집집마다 들어가고 싶은 자리만 가시는 거야, 그 산할아버지가. 그런데 그런데를 들어가면 그냥 쌀 말고 이렇게 놓고 마당에다 멍석 피고, 집이나 이렇게 하고 사냐? 옛날 오막살이에? 마당마당 멍석을 피고 쌀을 하나씩 갖다 붓고 돈 놓고 인제 절을 하는 거야. 그럼 마을신이 한바탕씩 뛰고, 공순 주지. 그럼 그렇게 잘되고, 그렇커고 살았는데. 한 15년서부터는 없어. 사흘 저녁은 상인들이 와서 부주금을 해서 걸면은 새끼줄에다 해서 어마어마하게 걸어. 그러니까 그 상인, 사장들이 오는거야. 그러니까 주안시장 청량리시장 사장 노릇하던 사람은 다 늙어서 죽었어. 내가 그때 처녀였는데 내가 지금육십 일곱이 됐는데. 내가 처녀 였었는데, 열다섯살.
    조사자 : 그럼 마을 신은 어떤 분을 모셨죠?
    이매화 : 산, 낭구. 도당나무에 산신할아버진데, 글 몰라 웬만한 사람들은. 나무에 뭐가 있냐 그러지만은 옛날에는 이 동네가 굿할 때가 되면 안하면은, 저쪽 아래가 지금 집이 하나도 없었어. 나무가 착착하게 들어서면 범이 그냥 눈이 번쩍번쩍 허면서 비치고 사람 눈에 띄는거야. 무섬을 주고. 안하질 못하고 꼭 시월, 구월 스물 닷새날 날 받아가지고. 날 받는 날서부터 시월달까지 꼼짝못해, 굿하기 전에는. 이렇게나간 사람도 안들어오고 들어갔던 사람도 나가지 않고 콩도 못 볶아 먹고 팥죽도 못 쒀먹고 떡도 못 해먹고. 그렇게 해갔고 위해던 걸, 하나 둘 세월이 되니까 나가서 살잖냐. 저 그 아까 맏으들이. 교회 댕기고 뭐하니까 흐지브지 어떻게 망가지고 그냥 이래다보니까 동네에서 이제 관심이 없지. 노인네들 돌아갔지, 그렇게 위해던 양반들이 죄 돌아갔잖아, 세월이 갔으니까. 내가 처녀 땐데, 옌장 난 여기서 나고 여기서 자란 사람이야. 처녀 땐데 지금 옌장 육십일곱이 됐는데, 칠십줄에 들었는데. 다 돌아갔는데 지금 왔던 양반들, 골돌애해 하고 칠십줄, 지금 칠십줄. 그러니까 마딱하게 하니까, 아주 허술한거야, 마땅찮고. 그래다 나는 여기서 자라나가고 전라도서 여기 와서 사시는 댁으로 시집을 간거야. 그래갖고 내가 내렸어, 서른여덟살에. 할아버질 모신 거야. 오막살이 집에서 방 한칸 방 두칸 이런데서 모시고, 이렇게 하는데 거기서부터 내가 그냥 우리 할아버지 외아들인데, 칠 남매, 팔 남매 난 거야. 그래갖고서는, 연년생으로 낳아 가지고 잘 길르고, 그러니까 막내가 지금 서른 다섯 살인데 여섯 살 먹어서 내가 할아버질 모셨어. 여섯 살 먹어서 할아버질 모시고는, 그 여섯 살 막내, 고거 낳고 부터는 그냥 흐지브지 안하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그냥, 할아버지 그냥 여기 산할아버지 꿍얼 꾀어갔고는, 거기서 산신이 와가지고 꿍을 꾀서, 그걸 모셔놓고는, 대동굿을 안해. 안해도 아무렇지도 않은거야. 내가 그 대신 시골 출신이면 양, 어렵게 살면서도 칠 남매 데리고 할아버지한테 고사하는 거야, 인제. 할아버질 대우러, 혼자. 대동 윗동도 피난하게 해주시고 다 집안 편안하고 자손들도 잘 자라게 해주고 … 어쨋든 이 번말이야, 여기가. 옛날 번말. 근데 이 번말집 여 편안하게 해달라고 오늘날까지 이제 한게 하다 보니까 내가 잔골 꽤 들여서 그런지 내가 진짜 저, 저기서는 진짜 이름 났어, 구리시에서는. 내가 사람 죽으면은 큰 굿 보담두 사람 죽으면 그 잔거지라는게 있거던, 여기 들어와서 온 푸는거. 그건 치고 하는게 아니고 그게 인제 고리짝금고 옛날부터 하는데 고걸 인제 내가 알아가지고는 그냥 굿하는건 뭐 어쩌다 한 번씩 하는거 예수쟁이천진데 허냐? 덴가 고걸로 인제 이름이 나서, 만원씩 받고 오천원씩 받고 이렇게 집집마다 해주다 보니까 이만원 삼만원 이렇게 되가지고 지끔 세올이 서른 여덟살에 할아버지 모셔갔고 지금 예순일곱이니까 몇 해겠니. 이십 몇 년이 됐지, 고럼. 그래니까 소문이 나니까 각 골에서 나서 안가는데 없어, 전국을. 진짜, 아닌게 아니라. 삼천원짜리가 지금은 돈 오륙백 뭐 그런거 우습지 월, 그땟 돈 만원만 하냐? 그래갔고 허는데, 이 애들이 지금 전부 젊은 애들 뿐이고, 인제 저렇게 나가 살고, 또 길러서 나가 살고 딴 데 나가서 물이 들으니깐, 교회엘 미쳐갔고 죄 흐지브지하는거야. 그치만 번동 사람, 지금 왔던 양반이 이제 요요 몇 집은 번토진이야, 이렇게 원주 요렇게 해가지고 요렇게 쪼끔 안에, 교회 절대로 안 믿지. 교회 댕기는 사람도 안 두고. 내 볼 때 여 근방, 이 가외서 인제 그냥 떠 들어온 것들이 그냥 어떻게 해갔고 밀려 왔어, 저 중량곁 뚝방에 물가가지고 어느 핸가는 다 했는데 그사람들이 이리 셋방 얻어가왔고, 흐지브지 어떻게 집을 사갔고 들은 사람도 있고, 타관 것들이 많아요. 그래 본토진 사람은 몇 안되.
    조사자 : 여기 원래 사시던 분들은 본관이….
    이매화 : 이씨하고 김씨. 벽진 이씨하고 김해 김씨가. 요에 김서방이 많아. 이서방은 요기구리시 수택동이란데 있거던? 우리 벽진 이씨는 수택동 원적이야. 거기가 많어. 그러니까, 벽진 이씨야, 벽진 이씨. 그렇거고 해서, 우리 애들은 지금 절대로 교회안하지 교회 안하고 절대로 우리애들은 안댕겨, 우리 집안들은, 고런데 지금 요런 집들도 안댕겨, 여기 밑는 사람은. 그런데 일년에 한 번씩 인제 안함으로써 고걸 알아갔고, 내가 이렇게 모시고 비나이다 하니까는, 시월 초하루, 칠월 초하루, 이렇게 소머리만 사가지고, 여기는 머리만 받지 게기도 또 돼지머리 그런거 안해, 소머리 큰 거 사다가 과놓고 인제 치성을 드리는 거야. 그러면 고거 치성하고, 초하루날부터 내가 가서 비선하고 빈하는 거거던. 게가 인제 그냥, 동네에선 그냥 요기 믿지만 알지, 교인들이 와가지고 가진짓 다 해도 못해, 엄히 여기 번토징인데 어딜 저기 해. 그렇지만 교회가 그렇게 들어시고 그러니까, 그 뭐 남을 말릴 수있냐, 우리네가 그냥 그런 집은 그렇거 살고 이런집은 이렇거 살다고. 우리 몇집들은 밑고 사는거야, 그냥. 난 처음에 여 도당할아버지를, 도당이라고 그래, 산할아버지를 갔다. 도당할아버지가 인제 처음부터 내려서 영한 소리 하고 그니까 이렇게 이렇게 해니까는, 지금 인제 이렇거 하고 사는 거지, 뭐. 그런대로 저런대로 그냥, 교인은 교인인가보다 그러고, 떠도는 사람은 그래도, 번토중에서 겸했던 사람은 나보믄 반대 안해, 환영하지. 본시 아주 그렇고, 여기서 배워서 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나서 여기서 자라가지고 내가 시집이라고 저 전라도 사람한테로 가가지구, 전라도서 이사온 집으로 시집을 가갔고, 팔 남매를 낳는데 하나 잊어버리고 칠 남매 다 길렸어, 내가. 오막살이 집에서. 그러면서 이렇게 할아버지 모시고그냥 방한 칸에다 글씨로 써서 이렇게 모시고, 이렇게 했거든. 그런게 이제 지금은 잘 모르주 있어서 3층까지 짓고 칠남매들 다 자라서 동서남북에 가서 다 살구, 딸들이 다 시집가서 자가용 몰구, 다 잘 살아. 내가 무신 저기해서 그런 게 아니라, 모 할아버지가 도와줘서 살지. 그러니까, 우리 막내 시누가 교인이야, 저 대구서 집사야. 근데 애들 보면은 느희들은 왜 엄마 뜻을 딸냐고, 하느님 믿으라고 그림 코방구도 안뀌고 그래. 그까짓거 댕기지도 안거던. 막내시누가 안댕겨, 지금. 그럼, 할아버지가 밥 맥여주시고 가리키고, 다 국민학교도 참 … 그냥 … 몇 년살인데 다섯이 한 번에 들어갔는데 그, 보통 어려운게 아냐. 그런데두 고생 무척했어. 방 한칸 두 칸에서 시어머니하고 시누하고 한방서 이렇게 해서 제, 할아버지모시고, 만날 할아버지가, 산기도를 가면은, 3층빌딩, 그때는 빌딩 없었어, 말끝마다 3층빌딩 짓게 해주고, 금시발복 시켜주마 그러셨어. 거짓말 요만큼도 안한거야. 그래갖고 해서 내가 월로 이 오막살이집에서 칠 남매 해가지고 어떻게 금시발복하고 뭘해, 안그래? 삼층빌딩을 어떻게 지어, 그랬더니 그게 아니고 몇해 벌어갔고, 집이 그냥 슬래터집, 그거 치고 슬래터 집, 창고 마냥 지었다가 또 인제그거 헐고 밑에 보니까 또 그냥 집이 언찮다, 뭐 이런 집에서 어떻게 일을 하느냐, 인나놈들이 오면 그랬잖냐. 그러니까 집 보고는 오지 말라고, 당신네 덕볼라 그런거니까, 오지 말라고. 그냥 이래가면서 해도, 기분이 그게 아니지. 그래서 십원씩십원씩 벌어도 딸 넷이 그냥, 진짜 막내만 고등학교 나왔지 중학교도 못 갔어, 공장에 댕기고. 그전에는 엄마가 이렇게 되니까. 지금, 참, 배불른 사람들이야 이 학생들. 왜그러냐면은 국민학교도 못가고 배지 못해도 지금 딸 넷이 동서남북에 시집가도, 칠 남매 맏이 팔 남매 맏이라 가서 다 시부모 모시고 잘 살고, 자가용 몰고 잘 살어. 저희 저 뜻대로. 그러니까는 그냥, 아들들은 그냥 이렇게 하는대로 다사는거 아니야, 보니깐. 그니까 집을, 할아버지 모시고 나서 네번째 진거야, 이게 진짜 3층 지었잖냐. 지하, 이거, 이렇게 삼층에다 모셔봤으니까 원 풀었지, 또 이제 금 그 … 알맞뜨에서 저기 앞에서, 하나쓰기 여러 식구 칠 남매 시집보내고 장가보내고 하면서도 얼마나 내가 알뜰하게 했냐, 옷하나 안 사 입고, 우리가 하는 적에는, 할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술 한 잔 안 먹고 담배 하나 안 먹거든. 그니까 그렇게 막, 아주, 농협에서 저축상도 탔어. 그렇게까지 했어. 그게 무신 많이 해서가 아니라 매일 같이 모 단돈 십원이라도 저축을 했어, 그렇게 해갔고 삼층빌딩 짓고 삼층에다 모셨지, 아들들 다 아파트 하나씩 사가지고 갔지. 그만하면 진짜 돈 벌었지. 금 그 내논게 칠백팔십만원 받았어. 해놨다가, 다 내놨어. 난 괜히 이런 사람 이렇게 끼고 댕기면 더 저거하니까 우리 내가 먼저 해야한다 그리고, 싹하고 가짜 반지 껴도 나는 좋은거 그건 줄 알거든, 진짠 줄 알거든. 게까 가짜 끼고 그냥, 싹 내놨어. 그니 금시발복 시켰다, 온대로 한대로 다 했어, 오늘날까지. 그니까 인제는. … 지금은 에이, 불러도 그렇고 없는 사람 없는대로 있는 사람 있는대로 하면섬, 그저 두 늙은이, 그냥, 시집장가 보내고 손주 열네마린데, 뭘. 남매씩. 그럼, 열넷인데 뭘. 아 그것도 공부 잘해. 잘 되면 그만이고 모, 돈이야 죽을 때 가져가냐. 그니까는 난 인약데, 이렇게 놀다가도 나가고, 그냥, 참, 여기서 만날 노는거 같은데 어뜨케 혼자 벌어서. 아들들이 이케 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거 다 가르켜서 다 저기하고, 그래도 고등학교 아들들 다 나왔구, 대학교만 못가르켰지. 그땐 뭐 대학교가 어디 저기야, 지금 인제 그냥 둘째 아들이, 큰아들이 마흔 여섯, 둘째 서른 여덟, 막내 아들이 서른 다섯, 막내야 그게. 그런데 뭘 무신 대학교가 어디야. 에휴 난 지금 데모하고 막 그럴 때 보면은 그냥 진짜 배부르다덜 그랬다, 투정하고…
    조사자 : 혹시 집에 도당 따로 모시는….
    이매화 : 따로가 아니고 절안에 그냥 다 같은, 저 부처님도 모시고 신령님도 모시고 저 위에 이층에 있어, 게 봇당이 있어. 한데다가.
    조사자 : 저희가 좀 볼 수가….
    이매화 : 왜 보면 안되, 보면 안되는 게 없지. 사진 찍어도 괜찮아. 모르는 소리야. 저런데 절에 가면 못 찍게 하고 그러는데, 못 찍는다고 무신 명기가 나가나. 그건 아무 상관 없어. 인제 고런것이 접 때도 한 번 젊은 사람이 왔다 갔어. 근데 난, 에휴 … 그런거 어찌고 저찌고 하길래 그런거 난 안한다고. 우린 여기 이동네서 난, 자라나서 이렇게 했기 때문에, 진실하게 동네만 지키면 된다고 이러고 말았는데, 뭐 어쩌고 저쩌고하고 갔다고.
    조사자 : 어르신 한자 성함하고….
    이매화 : 난 모르지, 난 이름 멋지게 좋지. 이매화야, 이매화. 벽진 이씨 이매화.
    조사자 : 생년월일을 저희가 알 수 있을까요?
    이매화 : 십일월 일일. 동짓달 초하루. 음력. 그러니까 예순 일곱이래니까. 삼십 오륙년 됐나?
    조사자 : 저희가 나중에 다시 이 집 찾아와서 여쭤봐도….
    이매화 : 그야 상관없지, 여태까지 그렇게 해 갔는데 그렇게 해갔고 오늘날까지 나가는 거야. 그런데 인제 거기 도당나무가 인제 위로 이 아래 있었는데, 거기다가 집들 짓기 땜에 자꾸자꾸 올렸으니 위에다 놨는데, 사람들이 그냥 그들 밑이니까 모 여기다 받지, 그늘 밑이니까 똥구녁을 들이대고 쭈구 안잖니, 가슴사게. 게까 나는 당신들이 동네 낭구가 아니면은 내 맘대로 하는데 돈이 있어서가 아니고 없던지 있던지 대동굿을 해서라도 허잖아, 그런데 하찮은델 가도 고거 낭구는 이렇게 해서다 저기를 해놔서 못 들어가게 해놓는데, 여기는 그냥 하물며 대동에서 그만큼 덕을 보고 위해는 나문데 이렇게 둔다고 내가, 통장보고 뭐라고 그랬어. 지금 그 사람하고 같이 통장하고 한 동에서. 그래갖고 내가 뭐라 그랬더니 시청에서 해준데서 그것만 바래고 있는거래잖아. 지금 게서 내가 딴 거 필요 없다, 거기 보호만 해다오. 난, 여러 사람 그늘에 똥구녁 들이대고 안지, 술덜 그냥 그늘이 지니까 아무나 올라가서 먹지, 막 그냥 거기 올라앉아 가지고. 치성드리는 자리에 그래서 쓰겠어? 깨끗하게 정결하게, 해기 위해서 내가 동네에서 찾기 안하면은 내가 한다, 내 돈 들여서, 빚을 내서라도 한다 그랬지. 그랬더니 한다 그랬었단 말이야, 근데지금 오시잖아, 시청에서 해준다 그랬어.

(자리를 2층으로 옮김.)

    이매화 : 옷이 다달라. 열두걸이야, 열두걸이. 굿이 열두걸이라, 처음에 입는게 이 옷이야.치성 내려준 이 옷을 입고 하는거야. 불사옷, 산신옷, 장군옷, 신장옷, 대감옷, 창구옷, 응…. 그 다음에는 인제 홍천굿 놀고 성주 놀고 장구 놀고 그러는인제 이러는 거니까 네 열두걸이지. 옷은 다 뒤바꿔 내놔. 홍천리옷, 남천리옷 장군동, 뭐 작별장군동 요런 집이 가면은 지금 우리는 옛날에 고대로 모신대로, 고대로 갔다가 한거지, 지금 새로 모시는 사람들은 우람해. 별거 다, 창이고 칼이고 이런데 해 놓고. 우리 내는 옛날적보다 간단하게 작두장군이야. 이렇게 저기하면 작두 칼질 쓰는거야. 올라서고, 그러는 것이 다 달라. 저 작두 우선 여기가 잠구고하냐 옛날에다 싸머두고. 이런 표시는 할아버지도, 궁중에서 입는 옷.

□ 제보자
김낙원 (토평동 벌말, 1931년 생, 남)
이연순 (토평동 벌말, 1934년 생, 남)
이매화 (토평동 벌말, 1935년 생, 여)
이성실 (토평동 벌말, 1931년 생,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