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수택동 이촌마을 산치성 l 민속문화 > 마을 신앙의 실태


1차 증언채록

수택동 이촌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시월 초에 날을 잡고 마을 공동제의를 치러왔다. 조사를 위해 찾아간 수택1동 경로당에서 만난 제보자 이학원 씨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이촌마을 공동체 제의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학원 : 수누피 거기가 원수택이고 여기는 이촌, 거기는 도당굿이라고 옛날에는 그것도 허고 도당굿도 허고 그랬거든. 도당굿도 허구 그랬어, 원수택은. 우리는 저 이촌마을이라고 분리가 되어 가지고, 여기는 이촌마을로 우리도 그전에 굿을 허고 또 그러다가, 당을 지어서 또 옛날에 뭐야 저 무슨 터주 주저린가 허고 도당할머니할아버지 그 나무를 다 위해 놓고 이렇게 지내고 그랬어. 일년에 시월 달이면은. 시월 달에는 말하자면 부락에서 이렇게 치성고사를 드리고 그랬다고. 다 없어졌어, 이젠 다 옛날 얘기지

‘산치성’ 또는 ‘동네치성’이라 불리던 이촌마을의 공동제의는 원래 수늪 마을과 함께 지내왔었다. 그러다가 이촌마을에 사는 이성남이라는 사람이 신이 들려서 이 마을에 당집(현재일화제약 정문 근처)을 짓고 난 후 마을제의도 독립적으로 지내게 되었다. 매년 음력 시월 초에 날을 잡고 당집 근처의 도당나무에서 도당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하는 제의가 이루어졌다. 마을 원로들이 제관, 제주, 대주 등이 되어 제를 주관하였다. 제에 쓰이는 제수는 마을 공동으로 추렴을 했는데, 보통 쌀과 돈을 걷었다. 구월 그믐날이 되면 도당나무와 우물에 금줄을 치고 부정을 방지한다. 제가 치러지는 사흘 간은 우물 사용을 금했는데 각 가정에서는 미리 물을 모아 두었다가 이 기간에 썼다.
마을에서 모셔지는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의 영험함은 부정한 몸으로 제의에 참석한 제관집에 대한 화재로 나타났었다. 집안에 부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의에 참석했다가 집에 불이 났던 일이 여러 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부정한 행위에 대한 도깨비장난이라 여겼다.

제의는 저녁 9시경부터 시작되어 도당할아버지, 도당할머니께 술을 세 차례 올린 뒤, 참여한 사람들이 소지를 올리고 난 후 우물에서 우물제를 올린다. 제의가 모두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당산나무 주변에 모여 떡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이 자리는 그 해 농사 및 마을 대소사에 대한 얘기들을 주고받는 마을 공동논의의 장이었다.
당집을 맡았던 이성남 씨가 어디론가 이사를 가고, 70년대 새마을 사업과 도로 건설 등으로 인하여 당집?도당나무?우물 등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촌마을 산치성의 맥은 희미하게나마 홍복순 씨를 매개로 이어졌다. 홍복순 씨는 마을에서 술집을 하던 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신을 접하게 되어 이성남 씨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집, 도당나무, 우물 등이 모두 사라지게 되자, 마을 토박이들을 중심으로 홍복순 씨 집 돌부처 앞에서 제의를 올리는 것으로 이촌마을 산치성의 명맥을 이어왔다. 마을 사람들이 제의 비용을 모으고 홍복순 씨가 이를 맡아서 제의를 지내온 것이다.

이렇게 희미하게나마 이어져 오던 이촌마을 산치성은 작년 홍복순 씨 마저 돌아가시게 되면서, 이제 그 명맥이 끊어져 버리게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마을 토박이들이 홍복순 씨를 매개로 하여 산치성을 지내던 당집 터(수택동 379-12번지)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 제보자 : 이학수(수택동 이촌마을, 1917년 생, 남)
□ 조사일자 : 2000년 9월 30일
□ 참고문헌 : 한철수, 「구리시의 세시풍습 : 구리시 수택동 이촌마을」, 『구리문화』제3호, 199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