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수택동 이촌마을 산치성 l 민속문화 > 마을 신앙의 실태


2차 증언채록


신대촌 마을 노인정을 찾아가 노인회장님과 인터뷰를 하였다.

    조사자 : 마을의 형성년도와 민간신앙 등에 대해서 조사해야 하는데, 노인분들이 많이 알고 계실 것으로 생각되어 이곳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구전되는 부분도 상관없으니 알고 계시는 대로 부담 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이윤재 : 마이크 있으면 곤란한데…. 일단 여기 수택1동만 해도 10군덴데. (노인정의)전화번호 어떻게 아셨어요?
    조사자 : 저기 나와 있어 가지고요…. (노인정 연락망을 바라보며‥‥)
    이윤재 : 그랬구만. 흐음, 이 동네도 그렇지만 여기 예전에는 수택리라고 그랬죠? 수택리. 이 동네가 3개 부락이 있었어요. 3개 부락이 있었는데 저기 수늪인데, 수늪을 원수택이라고 그랬고 여기가 검은배인데 검은배라고 그래요. 검은배인데 근데 검배 검배 그러지, 검은배라 하는데 여기는 신대촌이라고 그러고 이촌리라고 있지? 이촌리는 그 당시에 열 집 열 다섯 집 그 정도 밖에 없었어요. 현재 구리시장 뒷동넨데. 그래가지구 인제 (전주)이씨가 많아서 이촌이라고 했지. 근데 이 원수택 즉 수늪은 그러고 원수택, 신대촌, 이촌, 이것이 일정시대에 만들어진거라고…. 원래는 원수택을 수누피, 원수택을 검은배, 이촌을 옛날에 이촌이라고 했지. 원수택은 동네 생긴지가 오래됐죠. 그래서 우리도 몰라요, 우리도… 우리 선조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들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오래됐고 여기는 인제 그 당시는 옛날에는 요짝으로 이제 능선이 이렇게 되어있었고(손가락으로 능선을 그리며) 저짝으로는 이렇게 돼있었고 왕숙천으로 되어 있었고, 여기는 동네가 없었고 을축년 옛날 을축년을 아는지 몰라요? 을측년이 아마 천구백 한 이십년 정도 되었을 거예요. 을축년이라 그래가지고 저쪽 건너마을 토평리라고 벌말이라 그랬었거든요? 거기에서 살던 분들이 을축년에 홍수가 나서 물이 많아가지고 다 떠내려가는데 거기서 이제 건너와서 새 터를 잡고 그래서 이제 그것이 바로 인제 새 신자 터 대자 응? 그래서 여기가 그 당시 신대촌으로 맨들은 거지? 원수택 수택은 마찬가지로 으뜸 원자 근자 이렇게 마을 이름을 붙였던거지 그래서 여기 생긴지는 지금 현재 한 육십칠팔년전 얘기지 그쵸? 한 70년전 얘기네, 78년. 그 전 얘기고 인제 그렇게 물이 가는 바람에 건너와서 여기다가 터를 잡아가지고 인제 집들을 짓고 사니까 그래서 그 당시는 요기는 요쪽에 옛날 이씨가 사니까 그 당시 동네 이름이 검은 바위이고 여기는 새검배라고 했었다고. 근데 이것이 동네가 새로 생겼다고 해서 인제 그렇게 됐었는데 또 여기동네 유래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거 뭐 없어요? 인제 그렇게 생겼다는거 밖에 뭐…. 그리고 인제 아이구, 그것이 시방 많이 없어졌어요. 저기 저 원수택 저 앞으로 가보면 수누피 앞에 큰 장자못이라고 있어요. 그거 아는지 모르겠어, 장자못이라고…. 시방 저기 금호아파트 짓는데 거기 큰 장자못이 있는데 거기 장자못이 있었고, 고기에 인제 꽃정늪, 인제 연못인지 또 거기 가막늪이 있었고, 또 거기 올라보면 빨래늪이 있었고, 다우뿌리늪 있었고, 인제 늪이 큰 게 6개나 있었는데 저기 장자늪만 남겨지고 나머지는 다 메꿔져 버렸지. 그것이 늪이 생긴 유래가…. 우리가 들은 얘기지, 보지는 못했으니까. 이런 것도 하나의 전설이라 그러죠? 옛날에 그 장자늪이라는 데가 아주 장자 부자가 살았대요. 참 아주 큰 부자였는데 참 아주 구두쇠랍니다. 구두쇠인데 이제 하두 구두쇠니까 생선장사가 지나가도 생선 한 마리 안 사먹더래요. 생선장사가 담너머로 생선 한 마리를 던졌데요. 그런데 밥도둑놈이 들어왔다고 도로 던지더래요. 그런 정도의 구두쇠였는데 하루는 그 보통차림으로 중이, 즉 스님이지? 그것이 또 알고보면 도산데 중이 와서 이제 그 이렇게 염불을 하면서 인제 그 시주를 해달라고 하니까 이 사람이 이때 마침 그 마굿간이라고 알아? 마굿간 소 키우는데. 소 똥을치다가 그 꽹과리에다가 소똥을 한 바가지 팍 퍼주었다라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인제 이 도사가 잠자코 받아가지고 나왔대요. 나오는데 마당 끝에 우물이 있었대. 우물이 있었는데 인제 그 집에 며느리가 저녁 그때 해가 질 무렵이 되니까 저녁쌀 씻으러 나와서 물을 퍼가지고 바가지물 퍼서 인제 쌀을 씻다보니까 안됐더래요. 인제 그래가지구 인제 그 며느리 말이 “스님 그걸 절 주세요.” 인제 그 스님이 주니까 그걸 받아가지구 버리고 깨끗하게 잘 닦아가지고 내가 오늘 저녁 한 끼 안먹으면 되죠, 그러고 자기가 먹을 쌀을 거기다가 담아서 주더래요. 인제 하니까 이 인제 그것이 말하자면 그때말로 도사인데 그걸 받아가지고 가면서 내 뒤를 따르라 그러더래요. 내 뒤를 따르라고…. 자꾸 그렇게 되니까 그 할 수 없이 그 뒤를 따라가는데 시방 현재 아차산 있지? 장자늪이 벌판에 있는데 아차산 쪽으로 인제 가가지고 광장동쪽 있지? 인제 시방 광장동 옛날에는 광나루라고 했어 광나루쪽으로 가는데 지금은 4차선이 큰 걸로 났지만 옛날에는 겨우 사람이 다닐만한 길이었어. 여기는 강이 있고 저기에는 산이 있어서 거기까지 갔는데 이렇게 시방 지금처럼 말짱한 하늘이 그냥 번개 천둥이 일고 소내기가 퍼붓더래요. 이상하게도 도사가 걸어가는 데는 햇빛이 났대요. 전기를 밖에 비추듯이 불빛이 도사 지나가는 자리만 이렇게 딱 비추더래요. 그 부인네가 쫓아가다보니까 생각해보니 아휴~비가 오니까 장독대 안 덮었네? 이렇게 뒤를 돌아보니까 뒤돌아보기 전에 그 도사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말라고 그랬다거덩. 근데 장독대를 안 덮었네 하고 뒤를 돌아다보니까 시방 모가지가 삐뚤어져서 그 자리에 돌이 되었다 인제 그 말이지. 그래가지고 거기 우리도 봤어, 거기 시방 우미천이라고 있어. 광장동 가기 전에 검문소 있는 동네 거기서 당이 있었어. 당이 그 쪼그만 집, 옛날말로 당이라고 했지. 당집을 지어가지고 그 몸 화상을 거기다가 세워놓고 뒤돌아봐서 모가지 삐뚤어진 상을 거기다가 해봤다고 하더라구. 그래가지구 그 비가 와가지구 인제거기 홍수가 나가지고는 늪이 생겼다는 거예요. 바우부리 늪, 수늪, 빨래늪, 가마늪. 장자늪, 그렇게…. 그렇게 인제 생겼다는데 그 말이 우리들이 듣고 보고 있는 견지에서는 어느 정도 확실하다고는 볼 수가 있어요. 뭘 볼 수가 있느냐. 꽃장늪 위에 논밭이 무척 많았다고, 논밭이. 여기서 논밭이 무척 많았는데 그것이 인제 그 옛날에는 삽으로 파고 괭이질도 하고 가래질은 서이 하는 걸 가래질이라고 하지. 줄을 잡아서 여기서 여기까지 하는 거. 거기서 인제 기왓장이 나와요. 기왓장이 나왔어요, 봤지? 또 지금은 온돌이 보일러 온돌이지만 옛날에는 이렇게 고래를 캐고는 구들장을 파가지고 방을 불을 때가지고 방이 더웠었잖아. 또 고래 방고래를 켜가지고 구들장을 놓으면 여기 굄을 괴거든. 돌로 그러면 인제 다 통하라고 더운 게 그러면 그 돌이 시커매져요. 그러면 조막만해져요. 그것이 새까맣게 그슬린다고 근데 그런 돌로 나온다고. 그걸 내가 봤어, 또 주춧돌도 나오는 걸 봤고. 독 깨진 거, 항아리 깨진 거, 기왓장 거기 있던 건 확실한데 거기는 동네 거기 잘사는 집이 황토마을이라고 했었지. 이제 그것이 인제 전해져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지, 그리고 인제 여기는 이 동네는 별다른 게 없었고 이촌마을도 뭐 거기인제 흔히 인제 옛날로 치면 서울로 갈려면 거기를 거쳐서 가니까 여기서 가도 그 동네를 거쳐서 가고 저기서 가도 그 동네를 거쳐서 가고 인제 그리 거쳐서 가니까 이촌마을, 그 넘어가면 시방 뭐야 그 일화제약이라고 아는지 몰라. 일화제약이라고 큰 회사 있었어, 옛날에 거기가 학교 자리에요. 일본사람이 거기다가 터를 상당히 넓게 잡았지. 넓게 잡아가지고 학교를 짓고, 일정 시대에 학교를 짓고 운영을 하고. 마당도 있었고 인제 그랬는데, 그때는 그 학교의 이름이 성동상과 학교야. 성동상과 학굔데, 일정시대에 여기는 남북이 다 합쳐져 있었을 적에 하여튼 각도에서 십삼도에서 거기 학생들이 안 온데가 없더라고. 다 왔어, 함경북도서부터 저 제주도까지. 거기 학교 다 와가지고 이 근방은 학생들 하숙집이 많았지. 그렇게 큰 학교였었는데 해방이 돼가지고 일본놈이 쫓겨가는 바람에 버리고 갔는데 이제 그 당시에 그 후에 조양중학교로 바뀌었지. 조양중학교로 바뀌어가지고, 인제 서울이랑 가까워서 그런지 학생들이 많지 않아가지고 흐지부지 없어져버렸어. 그런데 인제 그거 벌써 일화제약이 무슨 뭐 누구라 그러더라? 일화제약이 들어오고 새로 생겨가지고 학교가 없어져 버렸지.
    조사자 : 거기 나무도 하나 있었다고 하던데….
    이윤재 : 어… 나무 있었지, 요 밑에. 저 서낭나무가 상당히 큰 게 있었지 그때 아람이 아마 이렇게 해서 나 앉아야 될 거야. 이 정도 됐다구, 그렇게 둘레가 컸다구. 서낭나무가 무척 거기다가 무신 머들 저… 지금은 그런 풍습이 많이 없어졌었지만, 가져가서 고사지내고 그런거 있잖아, 가을에… 거기다가 갖다놓고 절도 하고 그랬지. 근데 시방은 인제 여기 도시계획이 되는 바람에 인제 나무도 베어버리고, 없어지고 아주 뿌리째 캐버리고 거기다가 집을 지어봤어요.
    조사자 : 중요한 나무였나봐요?
    이윤재 : 그것이 아주 중요한 나무였지. 아주 상당히 컸으니까 컸지 나무 있단 말은 어디서 들었어요?
    조사자 : 여기 조사하다 보니까 중요한 나무 같아서
    이윤재 : 없어, 뭐 들을 얘기?
    조사자 : 수누피 마을과 이촌마을하고 산치성에 대해서 좀 말씀해 주시지요.
    이윤재 : 그런데 인제 그것은 여기서는 인제 그 수누피지, 수누피 그서 인제 그 도당제라고, 도당제. 일년에 한번씩 도당굿하고… 미신적으로, 미신적으로 무당이 도당굿을 하고 하면은 인제 그, 그 동네에서 인제 자연스럽다고 해야 할까? 무신 뭐 해가지고 도당신이 인제 올해는 이집으로 가고, 또 내년에는 저 집으로 가고 또 작년에는 우리가 했고… 뭐 그런게 있었지. 그래가지고 그런 게 인제 다 해서 치렀는데 거기도 큰 고목이 있었다고. 아주 큰 고목이 있었는데 거기다 그것이 저런 말이 있죠. 가지가 썩어서 떨어지잖아? 나뭇가지가 인제? 떨어지면 아무나 주워서 때면 탈이 난대요. 탈이 나는데, 그거 맡은 집에서는 인제 갖다 때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 걸 치성음식 맡은 사람은 갖다 때도 괜찮다는 말이 있어요 근데 다른 거는 없어.
    조사자 : 이 마을 전체가 생긴지 70년 정도 된 건가요?
    이윤재 : 이 동네? 이 동네 생긴지는 그렇지 한 70 한 78년 됐지. 가만히 있어봐, 을축년이 시방 올해가 신사년이지? 에… 신사년이니까 지난 60갑자 아냐? 그러니까 두루 여섯해하고 육십허구…. 고것을 확실히 알려면 저기 연배가 있을건데… 가만히 있어봐(책을 펼치시며) 맞어! 1925년이야. 이 해에 물이 크게 났대요. 그리고 고 다음에 병자년에도 병자물이라고 또 크게 났대요… 맞어, 25년이야!
    조사자 : 그러면 여기는 주요 성씨가, 집성촌이 발달하지 못한 건가요? 그러니까 어떤 성씨가 특별히 많았다거나… 그런 게 없었나요?
    이윤재 : 여기에는 이씨가 많았지, 아니, 아니 여기는 인제 우리 파본데 벽진 이씨가 많았지. 벽진 이씨가 토평에서 살다가 여기로 많이 건너왔지.
    조사자 : 우리 아까 여기 찍었잖아. 건배마을 서낭나무 있었던 자리… 거기가 아닌 것 같은데
    이윤재 : 아, 서낭나무는 요 밑에….
    조사자 : 아, 잘못 찍었구나….
    이윤재 : 서낭나무는 요 밑에 있었다구, 위치?
    조사자 : 자리를 제가 알아서 사진을 찍어가야 되거든요.
    이윤재 : 거기가 인제 집이 생겼거든.
    조사자 : 거기가 집 지어진 데라도 상관없거든요. 예전에 있었던 자리를 알려주세요.
    이윤재 : 내가 알려줄테니까 나가지.(일동 나감)

□ 제보자 : 이윤재(구리시 신대촌 노인회장, 1930년 10월 19일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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