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안창동 동창마을 산신제와 부근제 l 민속문화 > 마을 신앙의 실태


1차 증언채록

동구릉 주변에 위치한 동창마을에는 마을 공동의 민속 신앙 유적으로 ‘산신바위’와 ‘부군당’이 있다. 마을 뒤 동구릉 산꼭대기에 있는 ‘산신바위’는 산신제를 지내오던 곳인데, ‘치성바위’라고도 불린다. 현재 산 소유자가 철조망을 치고 개를 기르고 있어 접근할 수가 없다. 산 아래에 있는 부군당은 부군제를 지내는 곳이다. 원래 청기와도 몇 개 얹어진 기와집 형태였는데, 한국전쟁 때 불타서 현재의 슬레이트지붕에 시멘트 벽돌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현재 부군당 안에는 호랑이 타고 있는 부군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신할머니, 산신할아버지 등을 그린 그림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부군당 역시 ‘봉은 본초 연구원’ 건물 안에 위치하고 있어서 쉽게 들어갈 수가 없다. 마을에서 만난 제보자들은 산신제와 부군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황춘균 : 매년 그냥 그 음력 정월달에는 산제를 지냅니다. 산제는 이전에는 이거 산에 올라가서 돼지를 짊어지고 가서 거기서 모가지를 따고 잡아 가지고 그러고 했었는데요. 요즘 그게 없어졌어요. 근데 중간에 올라가서 허고 산은 샀기 때문에 에 우리가 거길 못 올라가요. 그래가지고 억울한 애로점도 많고 그래도, 그런데 그게 이 그 동네 그 날 저녁에는 애를 낳거나 뭐 할 적에 들어오지를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고, 애 낳은 사람이 나가야지 밤에 절대 금지했었어요. 그래 산제사, 산제를 지내고 남자들 올라가서 떡방아, 남자들이 그냥 쌀을 쪄서 시루에다 떡을 허고 그러구.
    이성근 : 그래가지고 인제 돼지 잡고 떡허고 삼색 과일하고 이렇게 가지고 가서 이렇게 지내고, 또 해마다 했어요. 그게 한 오백 년 내리 했다고. 근데 이 땅이 그 전에 문화재관리국 정부 땅 이니까 그냥 우리 동네 밑에 가니까 그냥 가서 지냈는데, 인제 내 땅이니까, 금지구역이니까 들어가지 마시오 그러구 허고. 또 그 밑에서 지내는데 가 있어요.
    황춘균 : 부군당이라고요.
    이성근 : 또 당을 지어놨는데 당집 한 이 칸을 지어놨는데 거기서 지냈는데 거기도 제 땅이라고 이렇게 울타리를 해놓고 담을 쌓아 버렸어. 그래서 내가 그걸 내치 사람은 몰라도요 지금, 그 땅임자하고 그 나하고. “여보쇼 거 동네 대동에서 죽 말하자면 거기 치성을 드리는데, 여기는 유교고 당신은”, 지금 천주교거든 그 사람은, “천주굔데 신을 위하긴 마찬가진데 동네를 위해서 저기 좀 문은 냄겨두오, 들어가게” 그러구 얘기를 했다구요. 그런데 거기 제사지낼 때만 잠깐 열어주고 다른 때는 안열어줘.

이렇게 마을 공동제의를 지내는 장소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열의를 가지고 산신제와 부군제를 현재까지 지내오고 있다. 비록 산신제를 지내는 ‘산신바위’까지는 올라가지 못하지만, 제한적이나마 ‘부군당’에서 산신제와 부군제를 함께 지내고 있는 것이다 제보자들은 마을에서 모셔지는 산신 내외와 부군 내외의 영험이 대단했었다고 말한다. 김현오 씨에 의하면, 옛날에 부군당 앞으로 말을 타고 지나가는데 말발굽이 떨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산치성을 마을에서 소홀히 한 적이 있었던 해가 있었는데, 그 해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고, 농사도 잘 안되고 해서 그 이후로는 치성을 더 잘 드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한다. 김무희 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김무희 : 한해 정월달에 못하고 이월에 못하고 가을에 했거든. 자꾸 그냥 저 초상이 나고 애기 낳고 그래서. 그래서 그 때 아주 동네가 젊은이들이 많이 않고 그랬지.
    조사자 : 산치성을 안 지내서 그런 거예요?
    김무희 : 아니 인제 달을, 시방 제 달에 안하고 자꾸 냉기고 냉기고 그래서 그랬죠. 그래서 그렇게 됐죠.

또한 부군당에 모셔진 산신할아버지, 할머니와 부군할아버지, 할머니 그림을 훼손시킨 사람이 금방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황춘균 : 그 사람 미친병 걸려 가지고 갖다 불사러 놨어. 금방 죽었어. 얼마 못 살고, 몰래 훔쳐 가지고 불사러 가지고 거지되어 죽었어.

동창마을의 산신제와 부군제는 매년 음력 정월에 지내 왔다. 제의 날짜는 고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음력 일월 일일 날 아침 동네 어른들이 날을 받는 것이다. 보통 제의 날짜는 정월 초닷새를 넘기지 않는다. 이는 초닷새를 넘기면 대개 부정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보통 정월 초이틀이나 초삼일 사이에 제의 날짜가 정해진다. 동네에서 산신을 모시고 있는 기자에게 제의 날짜를 받고 이것을 온 마을에 알리면, 세배를 포함한 모든 동네 행사가 중지가 된다. 세배를 받던 동네 어른들은 세배를 받지 않으며, 절을 하던 사람들도 절을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이 동네 바깥에 세배를 간 사이에 제의 날짜가 정해지면, 그 사람마저도 제의가 끝날 때까지 못 들어오게 막았다고 한다. 아기를 낳을 때가 된 산모 역시 마을 밖으로 나가서 애를 낳고 들어오게 했다고 한다. 제의 날짜가 정해지면, 생기복덕을 봐서 맞는 사람을 골라 제의를 주관할 제관들을 뽑는다. 산에 가서 황토흙을 가져다 집 대문 양족 옆에다 놓고, 새끼를 꼬아 놓아서 이 집은 산에 올라가는 집임을 알린다. 그리고 일체 부정한 일을 삼간다.

    이성근 :치성드리는 거예요. 이 저 육갑으로 생기복덕을 가려요, 이 나이 연령으로, 거기 올라갈 사람이….
    황춘균 : 나이가 거기 해당이 안되면 못 올라가.
    이성근 : 해당이 안되면 못 올라가고.
    황춘균 :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못 올라가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성근 : 네 다섯이나 이렇게 일 할 사람을 뽑아요. 그게 정월 초하루 날이면은 날을 보거든요. 그래서 인제 이튿날이던지 사흗날 나면, 거 몇 살 몇 살 먹은 사람이 올해 치성 드리러 가야겠다 하고 뽑아 놓죠, 미리.

마을에는 마을 공동제의 때 사용하는 우물이 있었다.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물이 전혀 넘치지 않는 우물이었다고 한다. ‘창디우물’이라고 불리는 이 우물은 마을 앞으로 고속도로가 나면서 사라졌다. 예전에는 제의 날짜가 정해진 이 우물을 다 청소하고, 제주는 이 우물에서 목욕재계를 했다. 이 우물에서 쌀을 씻고 우물물로 술도 담갔는데, 물이 워낙 좋아서 하루 저녁만 되어도 술이 되었다고 한다.
제의에 사용되는 제물들은 모두 산신제를 지내는 ‘산신바위’ 근처에서 준비했다고 한다. 직접 제주들이 제물로 올릴 재료들을 짊어지고 올라가서 직접 준비를 한 것이다. 절구까지 가지고 올라가서 떡을 만들었으며, 돼지도 직접 잡았다고 한다. 제의에 제물로 올려지는 돼지는 까만 수퇘지였는데, 직접 산 위에서 잡아서 상체는 산신제 제물로 쓰고, 하체는 부군제 제물로 사용했다.
동창마을 공동제의에 올려지는 제물 중에 특이한 것은 ‘용떡’이다. 용떡은 용의 모양을 흉내내어 만든 떡인데, 술병의 형태처럼 만들어 눈썹, 코, 귀까지 붙여서 시루 위에 올려놓는다. 이 용떡에 대해 황춘균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황춘균 : 용떡은 아래 위 다 쓰는 거야. 위에 쓰고 아래 쓰고. 모양을 맨들기가 아주 힘들어. 그냥 저 우리 고려청자기 맨들 듯 손으로 잘 비벼서 맨들어야지, 이게 잘못하면 죽이 되고 잘못하면 흐터 버려져 없어져. 그러니까 힘들어요. 눈은 팥으로 놓고, 고다 위에다가 눈썹은 팥쪼깐 찢어서 놓고. 그러니까 용모양 맨들고 이쁘게 맨글어, 조작을 잘해야 된다고. 그리고 여기 이빨에는 여기다가 팔을 하나, 둘, 셋, 넷, 다섯 개를 붙여. 그러니 입이 되지. 눈썹 코 다 맹기는 거지.

이 용떡을 제물로 올리는 이유에 대해 황춘균 씨는 마을 앞에 개천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은 물이 없으면 못살기 때문에, 이 개천을 관장하는 산신에게 용떡을 만들어 바치는 것이라 한다.
제의는 예전에는 ‘산신바위’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산밑으로 내려와 부군당에서 부군제를 지내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지금은 ‘산신바위’까지 올라갈 수가 없기 때문에 산 아래에 있는 부군당에서 산신제를 함께 지낸다. 현재 마을에는 제의 때 읽는 축문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부군제 축문 ]
    府君祝

    歲次戊寅年乙亥朔正月初三日 丁丑
    敢昭告子
    府君尊靈地下東倉部落人民一同
    安過太平災厄消滅牛馬繁晶
    白穀豊等神其保佑謹以淸酎(酌)
    庶??恭伸奠獻尙

[ 산신제 축문 ]
    山神祝

    歲次戊寅年乙亥朔正月初三日 丁丑
    敢昭告于
    山神尊靈地下集倉部落人民一同
    安過太平災厄消滅牛馬繁昌
    白穀豊等神其保借謹雌淸耐(酌)
    庶??恭伸奠離尙

제의가 끝나고 나면 제주들은 제물로 올렸던 북어 반 쪽, 문어 반 쪽, 곶감 반 쪽까지 나누어서 창호지로 싸서 집집마다 나누어준다. 동창마을 사람들은 비록 예전처럼 산신제와 부군제를 지낼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마을 공동제의를 지낼 것이라는 의지를 내보였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려는 열의도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땅 주인과 이야기해서 방안을 강구해 보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