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사노동 산치성 l 민속문화 > 마을 신앙의 실태


1차 증언채록


사노동 안말에서 북서쪽으로 20여 분 걸어서 가면 사노당 산치성을 지내는 당집이 나온다. 당집은 마을 외부 사람인 경우에는 쉽게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조사자는 안말 노인회장인 임정태 씨의 안내를 받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당집까지 갈 수 있었다. 신성시하는 소나무들로 둘러싸인 2칸으로 된 당집 안에는 시렁이 있고, 젯상이 두 개, 그 앞으로 향로를 올려 놓은 작은 상 등이 있었다. 모시는 신을 형상화한 그림이나 조형물은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이 당집에서는 매년 음력 시월 초하루부터 초사흘까지 삼일간 마을공동제의가 벌어진다. 시월 초하루날 저녁에 제물을 준비하고 차려서 초이튿날 밤 열두 시까지 제의를 드리고 초사흘날 파제를 하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마을 공동제의를 ‘산치성’, ‘산제’, ‘산신제’ 등으로 부른다. 이 마을 공동제의에는 사노동의 여러 마을, 즉 안말, 두레물골, 양지편 사람들이 참여한다. 언제 마을의 경우 해방 직전까지 함께 참여했으나 해방 직전부터 독립적으로 제의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제의를 주도적으로 주관하는 사람들은 영좌라 불리는 마을 대표들이다. 세개 마을에서 영좌들이 주도하여 제를 주관할 제주들을 선정한다. 마을에서 만난 이덕만 씨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덕만 : 여기 산치성은, 나 와 가지고도, 여기서 내가 오십 삼년을 사는데, 해마다 모시죠. 그게 인제 깨끗한 사람으로다가 세집을 뽑아 가지고, 시방은 또 그렇게도 안 허나봐. 사람사가지고도 그냥들 허나봐. 그런데 그 아주 깨끗한 사람으로다가 세, 삼 화주를 내, 세 사람. 그래가지고 그 화주를 봤거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도 여러번 봤어. 그런데 아주 정갈시러워야돼. 집에서 큰소리도 내지 말아야 되고, 젊은사람들이 또 몸 뭐, 저거를 부정허면 또 그것도 못 허고. 나이 먹은 사람들이나 허지, 나이 젊은 사람들은 허기가 힘들었지, 그랬다고. 시방도 그렇게 깨끗한 사람이나 거기 올라가지, 좀 이런 상제거나 부정허거나 한 사람은 못 올라가지, 시방도.

이덕만 씨의 제보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제를 주관하는 제주들을 이 마을에서는 화주라 부른다. 그리고 화주는 다시 사흘 동안 제의를 주관하는 본화주와 본화주를 보조하는 대리화주로 나누어진다. 화주로 선출된 사람들은 예전에는 선정된 날부터 108일 동안 개고기는 물론 비린내 나는 음식 일체를 입에 대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부부관계나, 시신, 사고 등 부정한 것들은 화주 자신은 물른이고 그 가족들까지 보지 말아야 했다. 이렇게 금기가 엄격했기 때문에 화주를 선정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제주들의 조신한 행동은 제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겨울이 다가오는 때임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물로 목욕재계를 하는가 하면, 제수를 장만하러 서울에 있는 시장으로 갈 때는 부정한 것을 보지 않기 위해 아예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기까지 한다.

    임정태 : 지내는 동안에는 동네 사람이래도 나갔던 사람들은 그냥 나가지 않지, 외부엘. 만약 나갔었다 하면 안 들어오고. 가령 비린거, 치성이라는 것은 비린 것을 안 먹고 지내게 되어 있잖아. 전에는 뭐 저 중량교벌 뭐 치성 제물 같은 거 사러 가잖아. 사러 가면은 저 중량교 다리 밑에 물에 들어가서 벌거벗고 목욕을 해요. 그래갖고 치성드릴 과일을 사 갖고 와서 제를 지내지.

이렇게 제주들과 일반적인 마을 사람들까지 조심을 하는 것은, 산치성에서 모셔지는 ‘산할머니’에 대한 예의일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산할머니의 경외스러운 영검을 믿기 때문이다

    추기만 : 이 저 산치성 지내는 거 그거는 아주 영검합니다. 정말 영검해요. 그 우리 아버님이 그걸 위배해설랑, 위반해설랑 돌아가셨어요. 그건 분명해요. 왜냐하면은 여기는 시월, 음력 시월 초, 저 구일 날로부터 시월 초삼일까지 기우를 해야 되는데, 우리 아버지가 안 해 가지고 설랑. 옛날에는 우리 아버지가 참 그줘 뭐 팔지도 않고, 허다 못해 채소도 안 팔았다고. 제삿날 사흘 앞두고.

    임정태 : 그러니까 앞뒤 날, 음력 시월 이일이 치성 날인데 일일이나 삼일이나 앞뒤로다가 자기 자신에 대한 치성의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데.
    추기만 : 가령 우리 아버지가 그때 말을 길렀대요. 그때 말을 길렀는데, 말을 가서 그때는 채소도 안 팔고 곡식도 안 팔고 하는 판인데, 저 안감내 동대문 신설동 안감내 높은 시장에 가서 장작을 팔고 말까지 팔고 왔어. 그러니 벌이 얼마나 엄하우. 괘씸하지, 아닌게 아니라 장작 판 것 만해도, 내다 팔지를 못하거든 집에 있는 거를. 그러니까 이게 그래요. 옛날에 우리 어렸을 적에 얘기는 치성 날 구월 이십 구입부터 시월 초삼일까지는 오는 사람도 못 오고 가는 사람도 못 가고, 만일 꼭 가게 되면 거기 가서 사흘 지낸 다음에 오고, 또 거기서 온 사람이 일일 날 왔으면 사흘지낸 다음에 가야지, 그 안엔 못 가. 그렇게 돼 있는데, 우리 아버지가 그것을 무시해 가지고 설랑 말을 팔고 왔단 말이야, 이일 날. 시월 이일 날. 그래가지고 그날로 팔고 오는 날로 이 반신불수가 됐어요. 그래 가지고 마흔 아홉 살에 그렇게 돼가지고 쉬흔 한 살에 돌아갔어요, 삼 년 만에.
    조사자 : 그때 몇 년도이죠?
    추기만 : 육이오 전이지, 육이오 전이야. 일정 때 얘기야. 오십 한 살까지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오십 한 살까지 살 때도 육이오 전이야. 그 후로 우리는 아휴 저 산신령님은, 아 그 산치성 때 말을 팔고 와서 그랬다고, 이렇게 해. 아직 그것을 후회를 하고 잘못을 했다고 그러구.
    임정태 : 산치성 때는 비린 것을 먹고 산에 못 올라가요.
    추기만 : 못 올라가요. 조개젓 무슨 뭐 이 생선, 고기 이런 것을 절대 못 먹어요. 사실은 피해를 입어요. 뭐 우리 아버지 뿐이 아니고, 다 피해를 입었다고. 그후에도 박○○이네 아버지가, 저 위에 사는 박○○이네. 그 사람 아버지도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 제사, 산치성, 그 양반이 화주를 잽혔어.
    임정태 : 화주가 이제 그 제주, 제주지.
    추기만 : 제주지. 그 동네에서 채택이 되서 했는데, 그 사이에 부정이 있었다 이 말이야.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했는데, 벌을 받아 가지고 이제, 돌아갔어요, 그 양반도.
    조사자 : 뭐 사고로 돌아가셨나요?
    추기만 : 그냥 돌아갔어요. 아무 이상 없이 돌아 간거야.
    임정태 : 그러니까 미신이 있다고도 볼 수 없고, 없다고도 볼 수 없고….
    추기만 : 그런데 우리가 지킬 것 지키고. 뭐 지켰다고 해서 무슨 큰 손해보는 거 없으믄 이렇게 허면 되는 거지. 그러니까 난 그대로 칠십, 나이가 일흔 두 살인데, 그대로 그냥 좋은게 좋지 그러구서 허는 거야. 우리 여기 산신은 정말 영검해요, 정말 엄해요. 그것만은 틀림없어요. 벌을 받아요. 꼭 벌을 받아요. 난 미신 이런 것은 상관없어요, 난 상관없어요, 꼭 벌을 받드라고.

본격적인 산치성은 시월 초하루 날 당집 제상에 제수용품을 정리하고 조라술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 뒤쪽에 있는 소나무 곁에 주저리를 틀어서 쌀과 엿기름 등을 넣은 조라술을 담가 제주로 쓴다. 이렇게 조라술을 만드는 것은 역시 모셔지는 신이 ‘산할머니’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월 초이튿날이 되면 제의에 올려질 숫소와 수퇘지를 삶고, 제상에 올릴 여러 제물들을 준비한다. 제상에 올려지는 제물들은 북어?대구포?소 산적?소간?소 천엽?소 콩팥?대추?감?배?밤 등이며, 제상 앞에는 시루떡?백설기 등을 놓는다. 그리고 제상 오른쪽에는 우족?우갈비, 검게 그을린 소머리와 돼지머리 등이 차려진다. 제물 차림에서 흥미로운 것은 ‘21목’이라 불리는 것이다. 치성을 드리는 동안 잡귀가 훼방을 놓지 못하도록 당집 밖 오른쪽에 따로 제상을 차리는 데, 이를 ‘21목’이라 부른다. 떡 한 쪽, 밤과 대추 각각 한 알, 각각 7쪽을 나눈 배 3개, 각각 7쪽으로 나눈 북어 3마리 등을 가로 7줄, 세로 3줄로 배열하여 21목을 만들어 차려놓는 것이다. 이는 산할머니를 따라온 잡귀들을 먹이기 위한 것이라 한다.
이틀간에 거처 온 정성으로 조심스럽게 마련된 제물들을 놓고, 음력 시월 초이튿날 밤 11시경에 치성이 시작된다. 치성 절차는 축을 읽은 후에 세 명의 화주가 절을 하고 소지를 올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소지는 세 명의 화주, 영좌, 통장 등의 순으로 올린다. 이렇게 지내는 것을 ‘밤제사’라고 부른다.
이 밤제사가 끝나면, 당에 올라간 사람들은 미리 끓여놓은 탕국을 먹으면서 함께 음복을 한다. 시월 초사흘 날 아침이 되면 파제사(罷祭祀)를 지내고, 화주, 영좌, 통장 등은 제의에 올렸던 제물을 똑같이 나누어 집집마다 돌린다. 그리고 이날 저녁에 다시 화주들이 당에 을라가 3개의 노구메를 지어 당에 올리는 ‘노구메 정성’을 지내고는 산치성을 마무리한다.

□ 제보자
임정태(사노동 안말, 1930년 생, 남)
추기만(사노동 안말, 1929년 생, 남)
이덕만(사노동 안말, 1933년 생, 여)
□ 조사일자 ' 2000년 10월 3일~10월 4일
□ 참고문헌 . 한철수, 「사노동 산신제」, 『구리문화』 2호, 1994년.